"경영환경 내년엔 나아질 것" 작년엔 81%, 올해는 6%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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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가 지난해 매출 상위 100대 기업 최고경영자(CEO)를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도 이런 결과가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다. 설문에 응한 97개 기업 CEO 중 내년 경영 전망이 올해에 비해 좋아질 것이라고 답한 경우는 불과 6명(6.2%). 47명(48.5%)은 다소 혹은 크게 나빠질 것이라고 예측했다(44명은 올해와 비슷할 것으로 전망). 경기회복 기대감이 높았던 지난해 연말, 본지가 100대 기업 CEO를 대상으로 실시한 경기 전망 조사 때는 '상승' '완만한 회복세' '답보상태지만 희망이 보인다'는 긍정적인 응답 비율이 81%였다. 지난해 연말의 희망적인 분위기가 1년 만에 완전히 가라앉아 버린 것이다.

◆ 자신감을 상실한 기업들=올해 영업이익이 지난해에 비해 줄어들 것이라고 답한 업체가 21곳이나 됐고, 내년에 더 줄어들 것이란 업체도 7곳이었다. 올해에 비해 내년 영업이익률과 투자증가율을 낮춰 잡은 곳도 각각 40%에 가까웠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이병욱 산업조사본부장은 "기업들이 통상 다음해 경영 계획을 짤 때 의욕적으로 목표치를 잡는다는 점을 감안하면 우리 기업의 위축된 심리를 그대로 읽을 수 있다"고 말했다. 기업들의 내년 매출 증가율 목표치는 평균 7.0%로 올해 예상치 8.7%보다 작았다. 반면 내년 영업이익 증가율 목표치는 평균 13.9%로 올해 예상치 10.8%보다 높았다. 매출 목표를 다소 보수적으로 잡으면서도 이익 목표를 높게 잡은 것은 그만큼 불확실한 변수에 맞서 효율성 높이기에 주력하겠다는 CEO들의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해석된다.

◆ 수출 대표 업종들도 한숨=업종별로도 조선업 정도를 제외하고는 하나같이 어두운 분위기다. 올해 환율 문제와 내수 부진, 제품가 하락 등의 악재로 주춤했던 전기.전자 업종은 내년에도 경영 환경이 어려울 것으로 전망했다. 응답 기업 10개 가운데 D램 수요 증가로 자신감을 찾은 하이닉스반도체를 제외하고는 내년 경기에 대해 올해와 비슷(5개사)하거나 조금 나빠질 것(4개사)이라고 답했다. 내년 매출 증가율 전망도 올해보다 두 자릿수 성장을 예상한 하이닉스를 제외하면 평균 3% 수준으로 100대 기업 평균(7%)에 크게 못 미쳤다.

전자업종과 함께 수출의 양대 기둥인 자동차 업종도 8개 기업 중 5개가 올해보다 경영 환경이 나빠질 것으로 답하는 등 내년 경영에 큰 불안감을 나타냈다. 수출 비중이 70% 안팎인 국내 자동차 업종은 환율 때문에 가격 경쟁력이 낮아지는 위기를 겪고 있다. 한국자동차공업협회는 내년 자동차 산업 규모가 수출 280만 대(올해 대비 4.9% 증가), 내수 120만 대(4.3% 증가) 수준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 내수도 잿빛 전망=내수 업종인 유통.소비재 업계도 전망이 밝지 않다. 조사 대상 6개 기업 가운데 내년 경영 여건이 비슷할 것이란 응답이 네 곳, 다소 나빠질 것이라고 보는 업체가 두 곳이었다. 내년도 투자 규모, 매출 증가액에 대해 대부분 업체는 올해와 비슷한 수준이 될 것으로 예상했다. 투자 계획은 비교적 활발하다. 신세계의 경우 내년에 점포 확장 등에 1조원가량을 쓸 예정이다. 롯데쇼핑은 내년 투자액을 올해에 비해 30%가량 줄일 것이라고 답변했지만, 올해 롯데마트 점포 확대 등에 워낙 많이 투자해 상대적으로 감소한 것처럼 보일 뿐이라는 설명이다. 이 밖에 화학.정유.해운.통신 업종의 전망도 잿빛 일색이다. 은행과 건설업도 정부의 부동산 억제 정책 등으로 어려운 한 해가 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그러나 건국 이래 최대 호황을 누리고 있다는 조선업은 사정이 괜찮다.

황인학 한국경제연구원 기업연구본부장은 "내년은 거시경제 여건이나 정치적 상황 외에도 기업지배구조 문제나 집단소송제 같은 법적.제도적 변수가 경영환경을 더욱 불확실하게 하고 있다"며 "기업들로서는 일단 생존을 걱정할 수밖에 없게 됐다"고 말했다.

경제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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