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1년 남았다 <상> 징크스 믿어 말아 … 복잡한 방정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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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년 전 1등은 대통령 못 된다?=1997년(15대)과 2002년(16대) 대선의 결과는 선거 1년전 시점에서 보면 이변이다. 여론조사에서 처졌던 후보들이 역전의 신화를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1위를 달렸던 후보들은 고배를 마셔야 했다. 15대 대선을 1년 앞두고는 신한국당의 박찬종 전 의원이 수위를 달렸다. 그는 당시 같은당 이회창 전 총재와 국민회의의 김대중 전 대통령을 여유있게 앞섰다. 그러나 '킹 메이커' 김윤환 전 의원의 지원으로 '이회창 대세론'이 형성됐고 박 전 의원은 본선 출마조차 못했다. 하지만 이 전 총재의 아들 병역 문제가 불거지고 이인제 의원이 독자 출마하면서 최후의 승리는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돌아갔다.

16대 때는 변화가 더 심했다. 선거 1년 전 노무현 대통령(민주당)은 여론조사에서 3~4위권이었다. 1위를 달리던 '이회창 대세론'은 도저히 깰 수 없는 벽으로 보였다. 이번엔 국민참여 경선이 변수로 등장했다. '노풍'이 불면서 일순간 판세가 뒤집혔다. 월드컵 열풍을 타고 등장한 '국민통합 21'의 정몽준 의원이 대선 경쟁에 뛰어들어 3파전이 되면서 이 전 총재는 다시 한번 선두에 올라섰다. 하지만 '노무현-정몽준 단일화'가 다시 한번 이변을 만들어냈다.

두 번의 선거에서는 '1등 실패의 징크스'가 맞아 떨어졌다. 현재 선두에 있는 이명박 전 서울시장은 반론을 편다. 그는 "2002년과 2007년은 시간적으로 5년밖에 차이가 나지 않지만 변화의 속도는 과거 20년과 같이 빨랐다"며 "세상도 급변했고 정치환경도 변했기 때문에 과거의 경험이 미래에도 해당될 것으로 생각지 않는다"고 자신했다.

◆ 충청.PK가 승부처?=영.호남 간의 지역 대결로 치러진 역대 대선에서 전통적으로 충청의 표심은 승부를 가르는 결정적 요인이었다. 15대 대선 때 김대중 전 대통령은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의 도움으로 충청을 공략했다. 대전(45.0% 대 29.2%).충남(48.3% 대 23.5%).충북(37.4% 대 30.8%)에서 이회창 전 총재를 여유있게 따돌렸다. 노 대통령은 '행정수도 이전' 공약으로 파고들어 대전.충남.충북 지역에서 이 전 총재보다 25만 표를 더 얻었다. 충청이 캐스팅 보트를 행사한 셈이다. 최근 김종필 전 총재가 특정 후보를 지지하겠다고 했고, 충남 예산 출신의 이회창 전 총재가 정치 재개에 나서면서 충청표의 향배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부산.경남(PK) 변수도 주목된다. 16대 대선에서 '영남 후보'인 노 대통령은 한나라당의 텃밭인 부산 표에서 29.9%를 득표했다. 15대 때 김대중 전 대통령은 경남에서 11%를 얻는 데 그쳤지만 이인제 의원이 31.3%를 득표해 표를 가르는 바람에 어부지리를 얻었다. 요즘 한나라당 내에서 "PK의 선택에 주목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PK 민심을 잡기 위한 이 전 시장과 박근혜 전 대표 간 경쟁이 뜨거운 것도 이런 맥락이다. 둘 중 한 명이 독자 후보로 나선다면 PK 표의 분산은 불가피해진다는 분석도 나온다.

◆ 깨진 징크스도 있다=대선의 징크스가 늘 적중하는 것은 아니다. 2002년 대선에서는 '2위 당선의 법칙'이 무너졌다. 2위 당선의 법칙은 87년 대선에서 2위를 한 김영삼 전 대통령이 92년에 당선이 됐고, 92년에 2위를 한 김대중 전 대통령이 97년 선출된 데서 나왔다. 하지만 97년에서 2등을 한 이회창 전 총재는 2002년 대선에서 또 실패했다.

강주안 기자

*** 바로잡습니다

12월 18일자 5면 '대선 1년 남았다'의 도표 중 15대 대선의 득표율로 보도된 수치는 서울지역의 득표율이기에 전국 득표율인 김대중 40.3%, 이회창 38.7%, 이인제 19.2%로 바로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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