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박전화 사기 전국서 기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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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14일 오후 1시쯤 강남구 삼성동 정모(53)씨의 구두수선 노점으로 난데없이 "아빠, 납치됐어요"라는 전화가 걸려왔다. 중학교 1학년인 아들의 목소리와는 달랐지만 당황한 정씨는 아들이 겁에 질려 그런 것으로 생각하고 "옆의 아저씨를 바꿔라"고 했다. 전화기를 넘겨받은 남성은 정씨의 휴대전화 번호를 물어본 뒤 곧바로 휴대전화로 전화를 걸어 "전화를 끊지 말고 근처 은행에 가서 내가 말하는 계좌로 500만원을 입금하라"고 협박했다.

정씨는 지시대로 은행에서 돈을 송금하면서 옆 사람에게 메모지로 경찰에 신고해줄 것을 요청했다. 출동한 경찰은 즉시 은행에 지급정지 신청을 했으나 이미 280만원이 빠져나간 뒤였다. 게다가 정씨의 아들은 납치는커녕 아무 탈 없이 집에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최근 이 같은 수법의 사기가 전국에서 벌어지고 있다. 12일 오후 경남 진주에서도 A씨(52.여)가 한 남성으로부터 "아들(26)을 납치했으니 1000만원을 입금하지 않으면 아들을 가만두지 않겠다"는 협박전화를 받았다. A씨는 아들과 연락을 취하려 했지만 휴대전화가 꺼져 있어 진짜로 납치당했다고 믿고 800만원을 입금했다.

하지만 알고 보니 A씨의 아들은 같은 시각 PC방에서 게임을 하고 있었다. 아들은 경찰에서 "서울지검 직원이라는 사람이 전화를 걸어 '당신과 같은 복제전화를 사용하는 마약사범을 잡으려 하니 수사가 끝날 때까지 휴대전화를 꺼 달라'고 요청해 휴대전화를 껐다"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번 주 인천.울산.서귀포 등지에서도 비슷한 거짓 협박 전화를 받았다는 신고가 잇따르고 있다. 경찰은 모두 동일범의 소행일 것으로 보고 수사를 펴고 있다.

권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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