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책갈피] 아빠가 쓴 책은 읽지 말라니 … 마누라 맞아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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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까칠한 가족
조반니노 과레스키 지음
김운찬 옮김, 부키, 408쪽, 9800원

"저분이 네 아빠야?"

"아니, 우리 아빠는 밖에 계셔. 저 사람은 우리 운전사야…우리 운전사도 아주 멋져. 파리에서 메달도 받았어. 이렇게 큰 금메달이야."

어린 딸이 자존심 싸움에서 지지 않기 위해 두 눈 멀쩡히 뜨고 있는 아빠를 친구에게 '운전사'로 소개한다면 아빠의 기분이 어떨까. 주인공은 '나는 아버지로서는 기분이 매우 언짢았지만, 운전사로서는 커다란 자부심을 느꼈다'고 말한다. 아버지인 주인공의 직업은 작가.

그러나 집안에선 제대로 된 직업을 갖지 못한 백수 취급을 받는다. 아내 마르게리타는 남편이 쓴 책을 자식에게 읽혀선 안 된다고 주장하고, 아버지의 책을 읽어본 어린 아들 알베르티노는 짧은 감상평을 던진다. "대충 서둘러서 썼더군요."

논리로 무장한 딸 파시오나리아는 가족 중 제일 까칠하다. 첫 영성체를 받은 그는 축하 선물들을 보고 "선물을 살 때 사람들은 자기 마음에 드는 걸 사요"라며 시큰둥해 한다. 딸의 태도에 화가 난 마르게리타는 남편에게 말한다. "만약 내 딸이라면! 내가 따끔하게 혼내 줄 텐데!" 그러자 주인공이 답한다. "당신 딸이오, 마르게리타." 주인공은 "다른 사람의 자식을 가르치는 것은 아주 쉽다. 하지만 자기 자식을 가르치는 것은 아주 어렵다"고 털어놓는다.

다른 부모들이라고 다를까. 다만 이 가족이 좀 더 '까칠'할 뿐이다. '돈 카밀로와 페포네' 시리즈로 이탈리아에서 사랑받은 대중 소설가 조반니노 과레스키(1908~1968)가 자신의 가족 이야기를 연재한 연작 소설 중 일부를 뽑아 모은 책이다. 쓴 지 50년이 지난 이야기지만 낡은 느낌은 들지 않는다.

이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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