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름날에 조오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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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치자물 곱게 먹인 얼레에 감긴 연줄이듯
세상살이 일년 열두달 매듭없이 풀어가소
밤새워 소경불러서 안자경 읽는 마을.
재 담은 주발 하나 지붕위에 올려놓고
남먼저 한 동아리 정화수 길러오면
어느집 대밭에서는 참새떼 좇는 소리….
부럼깨고 진채 복쌈먹고 귀밝이술 뜨거워지면
만나는 사람마다 먼저 불러 더위팔기
여보게 내 더위사가라 내더위 사가라.
앞집에서 약밥 한숟가락 뒷집에선 잡곡밥을
동내방내 한바퀴돌자 한소쿠리 가득찼네
절구를 타고 앉아서 개와 함께 먹는 코흘리개들.
제웅치기 액을 막고 달불이로 풍년들면
석전놀이, 지신밟기, 횃불놀이, 줄다리기도
아이들 팔랑개비 따라 달집으로 모여들고.
남산만한 달집 위에 세상가득 떠오른 연
줄과 줄이 맞 닿으면 교접인가 풍쟁인가
꼬리에 신액소멸달고 액연줄을 끊는다.
처녀 총각 소망이사 장가들고 시집 가는 일
장가 들고 시집가서 달덩어리같은 첫아들 낳는 것
저마다 꿈을 안고 맞는 달이여, 만월이여.
※3월1일은 정월 대보름. 예부터 액을 막고 복을 비는 민속이 많았다. 세시풍속을 읊은 시를 싣는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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