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서 좀먹는 「걸프전 증후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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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젊은 여성들에 전투복 인기/불티나는 전쟁놀이 장난감/「미=선 이라크=악」 흑백논리도/편향된 시각에 거친 말도 예사
걸프전쟁이 한달 이상 계속되면서 젊은이들의 패션과 어린이들이 놀이·언어·일상생활속에 「걸프전 증후군」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전쟁발발후 최근 거리에는 군복과 유사한 복장차림의 젊은이들이 부쩍 늘고 아파치 헬리콥터·B­52 폭격기·탱크 등 전쟁놀이 장난감들이 어린이들에게 날개 돋친 듯 팔리고 있다.
특히 어린이들 사이에는 「미국=선,이라크=악」이라는 흑백논리 의식이 확산되고,나쁜 사람이란 뜻으로 「후세인과 같다」는 말이 통용되는등 걸프전 증후군이 어린이들의 언어·의식을 변화시키고 있다.
◇전투복 패션=서울 남대문시장등에는 사우디아라비아에 파견된 한국 군의료진 복장과 비슷한 황색 얼룩무늬 점퍼가 봄상품으로 출하돼 「전투복」이라는 이름으로 인기리에 팔리고 있다.
상인 김모씨(40·R상점 주인)는 『최근 파일럿점퍼를 찾는 여성이 하루 10여명에 달하고 심지어 남성용 군복바지를 줄여 입겠다는 여성도 3∼4명 정도』라며 『예전에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던 현상』이라고 말했다.
서울 신촌 이화여대앞 B옷가게는 최근 얼룩무늬군복을 찾는 여대생들이 부쩍 늘자 아예 쇼윈도를 군복차림에 방독면을 쓴 마네킹으로 꾸며놓았고 여종업원 3명 모두가 유니폼으로 군복을 입고 판촉활동을 벌이고 있다.
◇전쟁놀이 장난감=최근 어린이들에게 가장 인기있는 장난감은 군인인형에서부터 모형전투기까지 갖춰져 있는 미제 GI유격대 시리즈를 비롯,걸프전에서 맹위를 떨치고 있는 아파치헬기와 B­52폭격기·F­16전투기 모형들.
서울 롯데백화점에선 개당 5천∼3만원으로 비교적 비싼 편인 유격대 시리즈가 전쟁전에는 하루가 5∼6개 팔렸으나 최근에는 10여개 이상 팔리고 아파치 헬기와 B­52 폭격기 장난감도 전쟁전보다 2배 이상 판매되고 있다.
서울 E국교 하모군(11·4년)은 『미국 전투기나 탱크가 이라크를 공격하는 TV장면을 보면 통쾌하고 신이 나 GI유격대를 사서 친구들과 놀이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언어생활=국교 2년생인 아들을 둔 주부 김모씨(37·서울 학동)는 『TV뉴스를 보거나 전쟁놀이를 하면서 애들이 「미사일로 모두 죽여버리자」는 등의 거친 말을 하는 것을 듣고는 섬뜩했다』고 말했다.
서울 E국교 교사 김영자씨(44·여)는 『학생들의 방학일기중에 「미국이 꼭 이겼으면 좋겠다」는 내용이 많았으며 후세인에 대해서는 「지옥에도 못갈 사람」「빨리 없어져야 한다」는 등의 강한 적의를 나타내 충격을 받았다』고 밝히고 『어린이들이 편향된 시각으로 전쟁을 이해하고 오락게임 정도의 흥미 본위로만 생각해 교정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양선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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