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81% "생존 위해 군사력 강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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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한국인들은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위상과 책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우리 국민은 한국이 국가의 위상에 걸맞게 국제사회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고 답했다. 그러나 한국의 이익과 국제사회의 요구가 상충할 경우 국익이 우선돼야 하며 이를 위해 '하드 파워(Hard Power:군사.경제적 힘)'를 키워야 한다고 봤다.

국익 우선과 하드 파워 배양이란 생각의 이면엔 한국이 그동안 국제사회에서 홀대받았다는 피해의식이 자리 잡고 있다. "한국은 국제무대에서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고 있다"는 데 대해 70%가량의 한국인이 동의하고 있다. "국제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군사력이 강해야 한다"는 생각에 81%가 긍정했고, "우리도 핵무기를 보유해야 한다"는 데 대해 64%가 동의했다.

우리 정부가 매우 중요하게 추진해야 할 대외 정책 목표로는 경제 관련 문제가 높게 꼽혔다.

경제 성장(79%), 한국 노동자들의 일자리 보호(68%), 해외에서 한국 기업의 이익 보호(65%), 안정적 에너지 공급(63%) 순이었다. 핵무기 확산 방지(56%), 북한의 핵개발 저지(48%), 한반도 통일(43%)이 그 뒤를 이었다.

국제 테러와의 전쟁(34%), 유엔 강화(32%), 한.미 동맹 강화(29%), 비민주적 국가의 민주화 지원(21%)은 우선순위가 처졌는데 안보 현안에 대한 국민의 피로감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국제사회에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는 생각은 크게 늘어났다. 다양한 국제협약에 대한 적극적 참여의사를 통해 이를 확인할 수 있다. 교토협약, 국제사법재판소가 범죄책임자를 법정에 세울 수 있는 협약, 생화학무기 금지조약 내에 신설될 국제협약, 핵무기 실험 금지조약 등에 대한 참여를 묻는 질문에서 85~88%라는 높은 비율로 긍정 응답을 피력하고 있다.

그러나 이처럼 높은 지지율이 국제협약이나 국제사회의 결정을 따라야 한다는 승복감으로 이어지진 않고 있다. 한국의 입장과 국제기구의 결정이 다르더라도 한국 정부가 이에 따라야 한다는 생각에 대해 48%가 동의한 반면 51%는 동의하지 않았다.

국제사회에 참여는 하되 불리한 결정은 거부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의사표시이기도 하지만 이율배반적 입장을 취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숙종 성균관대 교수

■ 한.미 동맹, 주한 미군에 대한 견해는

한국인은 대부분 한.미 동맹의 변화를 불가피한 과정으로 이해하고 있다. 새로운 안보 환경의 조성에 따라 한.미 동맹을 바라보는 눈이 적절히 조정되고 있는 것이다. 미국에 대한 일방적 안보 의존에서 벗어나 한.미 동맹의 필요성을 국익 확보라는 현실적 관점과 미래 지향적 가치 관점에서 파악하고 있음에 주목해야 한다.

한.미 동맹을 유지하는 수단으로 기능해 온 미군 주둔의 찬반을 묻자 국민은 한.미 동맹이 지속적으로 유지되면서 시대적 흐름에 따라 조정돼야 함을 인정했다.

북한이 남한을 공격할 경우 미국의 군사력 개입에 찬성하는 비율이 82%에 달했다. 중국이 대만을 공격할 경우 미국의 군사력 개입에 찬성하는 비율(47%)보다 훨씬 높았다. 주한 미군이 즉각 철수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한국인은 3%에 불과했지만 단계적으로 축소해야 한다는 입장은 2004년 43%에서 49%로 다소 늘어났다.

주한 미군의 규모에 대해선 '적당하다'는 의견이 54%로, '줄여야 한다'는 의견(36%)과 '너무 적다'는 의견(8%)보다 훨씬 높았다. 필요한 만큼 상당 기간 주둔해야 하지만 규모는 형편에 따라 점진적으로 축소해야 한다는 결론이다. 주목할 점은 주한 미군의 역할.규모.철수를 둘러싼 계층 간 의견 차이가 좁혀지고 있다는 것이다.

주한 미군의 역할에 관해선 북한의 공격을 억제하는 역할(39%)보다 한반도 주변 지역의 안정에 기여하는 역할(59%)을 기대하는 비율이 더 높았다. 미국이 전략적 유연성에 기초해 해외 주둔군을 재배치하려는 계획에 대해서도 대체로 수긍하는 편이었다.

논란 중인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문제 역시 미국의 전략적 변화에 따른 동맹 재조정 과정으로 이해하고 있다.

누가 언제 환수할 것인가의 문제라기보다 환수 여부에 관계없이 한.미 공조가 대북 억제력을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가라는 동맹 신뢰에 관한 문제로 보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 문제가 권력 논리에 따라 동원되거나 정책 실패를 면하기 위한 면죄부로 활용돼선 안 될 것으로 본다.

한.미 동맹에 대한 한국인의 생각이 미국인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확인할 수 있다. 미국인은 미국이 국제적 역할을 수행하되 다른 국가들과의 협력을 주문하고 있다. 국제 문제 해결에 있어서 미국의 단독 역할 수행에 대해 10%만 지지하고 있다. 다른 국가와의 역할 분담과 임무 부담을 원하는 미국인이 75%에 달했다.

남궁곤 이화여대 교수,
민병원 서울산업대 교수

■'친디아'의 국제관
"세계화 좋다" 중국 87% … 인도 54%

세계 경제에서의 영향력 증대와 비례해 친디아(Chindia: 중국과 인도)에 대한 관심도 고조되고 있다. 친디아는 영어로 중국의 '차이나'와 인도의 '인디아'를 결합한 말이다.

중국의 국내총생산(GDP)은 2020년께 일본을 앞서기 시작해 2040년엔 미국을 추월할 것으로, 인도의 경제 규모 역시 2030년께 일본을 앞설 것으로 전망하는 분석도 있다. 이번 조사에선 중국과 인도의 국민이 세계를 어떻게 보고 있는가에 대한 분석도 포함됐다.

먼저 미국에 대해선 인도인이 중국에 비해 호감도가 높았다. 인도인의 대미 호감도는 56.9점이었고, 중국인의 대미 호감도는 51점이었다. 그러나 양국 국민 모두 미국을 중요한 대상으로 보고 있다. 대미 관계에 대해 중국은 동반자 관계(39%)보다 경쟁자 관계(52%)로 보는 견해가 우세했다. 인도는 동반자 관계(43%)와 경쟁자 관계(42%)로 보는 견해가 비슷했다.

유엔 안보리가 핵무기 보유와 핵연료 생산 방지를 목적으로 군사력을 사용할 수 있는 권리를 가져야 하는가에 대해 양국 국민 공히 허용 의견이 다소 우세했다.

이란 핵시설에 대한 군사 공격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유엔의 허가 아래 연합국과 같이 하든 미국의 일방적 군사행동이든 찬성이 많았다. 다만 동아시아 주둔 미군의 지역 안정 효과에 대해선 양국 간 인식 차이를 드러냈다.

중국은 지역 안정을 감소시킨다는 견해(56%)가 증대시킨다는 견해(18%)보다 높은 반면 인도는 두 견해가 서로 비슷했다(33%, 31%).

세계화에 대한 인식에선 중국이 우세했다. 중국인은 세계화를 좋다고 보는 견해가 87%로 압도적인 데 반해 인도는 좋다는 견해가 54%였고 나쁘다는 견해가 30%였다.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해선 양 국민 모두 긍정적 태도를 취했다. 중국인은 FTA 체결 대상국을 미국.한국.인도.일본 순으로 선호한 반면 인도는 미국.일본.중국.한국 순으로 선호했다.

아시아의 잠재적 갈등 요인으로는 중국과 인도 모두 에너지 경쟁에 주목하고 있다. 중국인의 경우 에너지 자원 확보 경쟁(84%), 아시아 국가 간의 경제적 경쟁(78%)을, 인도인의 경우 에너지 경쟁(79%), 경제적 경쟁(78%), 아시아 핵확산(76%)을 꼽고 있다.

이태환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 조사방법은=동아시아연구원(EAI)-시카고국제문제협회(Chicago Council on Global Affairs)의 공동 여론조사는 2004년에 이어 두 번째다. 아태지역 7개국(한국.미국.일본.중국.호주.인도네시아.인도) 국민을 대상으로 했다. 현대와 KTF.중앙일보가 후원했다. 한국 국민에 대한 조사는 올 7월 한국리서치가 만 19세 이상 남녀 1024명을 대상으로 실시했다. 최대 허용 표본오차는 95% 신뢰 수준에서 ±3.1%포인트다.

■ 여론 조사팀 구성

◆ 동아시아연구원(EAI)=김병국(고려대.EAI 원장).이숙종(성균관대.팀장).김태현(중앙대).남궁곤(이화여대).민병원(서울산업대).이내영(고려대).이태환(세종연구소) 교수, 정원칠.정한울 EAI 연구원

◆ 중앙일보=신창운 여론조사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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