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이철호칼럼

'노무현의 눈물' 다시 보고 싶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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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내일부터 이틀간 중국 베이징에서 미국과 중국의 전략적 경제회담이 열린다. 미국에서 헨리 폴슨 재무장관에다 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까지 가세한 모양새가 예사롭지 않다. 겉으로 내건 세계 경제의 지속적 성장과 양국 간 경제 협력이라는 고상한 주제와 달리 실제로는 환율전쟁의 서막이 오른 것으로 봐야 한다. 위안화를 평가절상하라는 압박이 시작된 것이다.

중국은 연간 2000억 달러가 넘는 대미 무역 흑자를 내고 있다. 중국은 그 상당 부분을 미 국채 매입에 쏟는 방식으로 형식적 균형을 맞추고 있다. 결국 미국은 부채의 힘으로 경제를 성장시켜온 것이고, 그 결과 막대한 경상수지 적자가 쌓였다. 현재 미국의 성장률이 다른 나라에 뒤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세계 금융시장은 빚에 의존하는 미국 경제성장의 어두운 면에 주목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달러화 약세 현상이 나타나는 배경이다.

폴슨 장관은 점잖은 외교적 발언을 내놓았다. "이제 중국도 세계 경제를 위해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민주당이 장악한 의회 쪽 분위기부터 심상찮다. 위안화를 충분히 절상하지 않으면 27.5%의 보복관세를 부과해야 한다고 벼르고 있다. 중국 역시 호락호락한 상대는 아니다. "위안화 환율은 국가적 이슈며 정부가 결정할 문제"라고 선을 긋고 있다. 미국의 국제적 이슈화 시도를 차단하려는 견제구다. 한편으로 중국은 "위안화의 유연성은 계속 확대될 것"이라고 복선을 까는 것도 잊지 않는다.

당장 위안화 평가 절상이 이뤄질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다만 이번 회담을 통해 두 나라는 세계 경제의 잠복한 폭탄인 위안화 환율을 놓고 협력이냐 대결이냐를 선택해야 할 기로에 섰다. 주요 경제연구기관들은 대체로 위안화가 15~40% 정도 저평가돼 있다는 보고서를 내놓고 있다. 협력 쪽으로 기울면 남은 문제는 절상 시기와 절상 폭이라고 봐도 무방할 듯싶다. 대결로 치달으면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렵다. 미국은 기축통화국의 위력을 내세워 작정하고 밀어붙일 것이고, 이에 대항해 중국이 현재 보유한 7000억 달러어치의 미 국채를 투매하면 국제 금융시장에 엄청난 파장을 피할 수 없다.

문제는 한국에 미칠 영향이다. 지난해 한국은행은 위안화가 10% 절상되고 원화가 2% 동반 절상될 경우 우리 무역 흑자는 오히려 8억 달러 늘어날 것으로 추산했다. 이런 낙관적 시나리오의 관건은 동반 절상의 폭을 최대한 줄이는 것이다. 그래야 경기 침체와 기업의 해외 탈출, 실업 증가를 막을 수 있다. 요즘 수출 기업들은 원화 환율이 920원대로 떨어져 쩔쩔매고 있다. 베이징발 한파를 피하려면 냉정하게 손익을 따져보며 대책을 세워야 한다. 환율이 오로지 시장에서 결정된다고 믿는 것은 너무 순진하다. 플라자 합의나 외환위기 때처럼 환율이 인위적으로 움직일 때가 가장 무서운 법이다.

지금은 외국을 돌아다니며 "한국 경제는 끄떡없다"고 우쭐댈 때가 아니다. 오히려 기록적인 호황을 누리고도 앓는 소리를 하는 일본을 눈여겨봐야 한다.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환율의 파괴력을 잊지 않고 있는 것이다. 우리도 국제적인 눈물의 로드쇼를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위안화 평가 절상의 피해를 미리 막으려면 "원화가 너무 절상됐다. 한국 경제의 미래는 어둡다"고 호소해 둘 필요가 있다. 이런 점에서 지난 대선 때 '노무현의 눈물'이 유권자의 심금을 울린 것은 소중한 경험이다. 환율을 잡느라 쓸데없이 수십조원을 퍼붓기보다 우리 경제의 어려움을 눈물로 솔직하게 호소하는 게 백 번 낫다.

이철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