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이라크/전비조달 “전전긍긍”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빚더미 이라크 비축분만으로 전쟁/우방에 손벌린 미 적자메우기 급급
걸프전쟁에 모든 국력을 쏟아붓고 있는 이라크는 텅빈 「주머니 사정」 때문에 배수진을 칠 수밖에 없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미국을 비롯한 경제대국들도 다국적군 전비마련에 전전긍긍하고 있는 판에 빚만 가지고 전쟁을 시작한 이라크로선 걸프전쟁이 물러설 수 없는 도박이다.
이라크는 80년부터 8년동안 이란과 전쟁을 치렀다. 대 이란전쟁전 이라크의 외화보유고는 오일 머니를 배경으로 3백50억달러(한화 약24조5천억원)에 달했고 대외 부채도 거의 없었다.
그러나 정전이 된 88년 외화보유고는 바닥이 드러났고,7백억달러가 넘는 막대한 대외부채를 안게 되었다.
이 숫자만 가지고 추정해보면 이라크는 이란­이라크 전쟁에 약 1천억달러를 전비로 사용한 셈이 된다.
이라크는 쿠웨이트 침공전까지 사우디아라비아와 쿠웨이트로부터 무이자 융자를 받아 군비증강을 계속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쿠웨이트가 이라크의 군비증강을 도와준 것은 이란의 회교혁명 수출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이들 두나라가 그동안 무이자 융자해준 금액은 약 4백억달러로 이라크 대외 부채의 60%에 달한다.
그러나 이라크는 이 돈을 부채로 생각하지 않았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쿠웨이트를 이란으로부터 지켜주는 이라크의 역할에 대한 당연한 대가,즉 무상원조로 받아들인 것이다.
이 돈을 쿠웨이트가 상환하도록 요구해오자 격분한 이라크가 쿠웨이트 침공을 결심했다는 분석도 있다.
이라크는 이밖에도 소련에 60억달러,프랑스에 30억달러 상당의 무기구입 채무,그리고 군수관련 물자나 생필품 구입으로 서방 각국에 약 2백억달러의 채무가 있다.
따라서 이라크의 총외채는 1천4백억달러란 엄청난 금액이 된다.
이라크의 국제금융시장 신용도는 형편없는 수준이다.
이라크는 지난 85년 몇몇 아랍계 민간은행으로부터 협조융자를 받은 것을 제외하면 국제금융시장에 자금조달자로서 참가조차 못할 정도였다.
따라서 이라크는 지금까지 비축해놓은 무기·식량만으로 다국적군에 맞서고 있는 것이다.
한편 다국적군의 선봉으로 걸프전을 치르고 있는 미국의 주머니 사정도 어렵긴 마찬가지다.
미국은 91회계연도에 책정된 1백50억달러외엔 자체적으로 전비를 마련할 여유가 없다.
91회계연도에 사상최고치를 기록하게될 3천1백81억달러의 재정적자를 줄이기 위해 미 정부는 5개년간의 단계적 삭감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이러한 장기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미 정부는 지난해부터 앞으로 5년간에 걸친 ▲세출삭감 ▲약 1천6백억달러의 증세를 결정해놓고 있다.
따라서 미국은 이번 걸프전쟁의 전비마련을 위한 증세는 생각지도 못할뿐 아니라 92회계연도 국방예산속에 한푼의 걸프전쟁 경비도 포함시키지 않을 방침을 굳히고 있다.
아시아의 공산화를 막는다는 대의명분아래 막대한 국채를 발행,거의 모든 전비를 자체 조달했던 과거 베트남전쟁때와는 형편이 크게 달라져있다.
이런 까닭에 미국은 세계 최강국이란 체면에도 불구하고 우방들에 손을 벌릴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번 걸프전쟁에서는 어려운 형편에 남의 도움을 빌려가며 전쟁을 치르고 있는 미국의 입장과 한푼없이 빚만 가지고 버티고 있는 이라크의 입장이 묘한 대조를 이룬다.<김국진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