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정리 필요한 평민당/이규진 정치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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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평민당이 수서사건 회오리에 휘말려 안팎으로 곱사등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의원뇌물 외유사건으로 이재근·이돈만 의원이 구속된데 이어 수서사건으로 당소속 이원배 의원이 수사대상에 떠올라 정치권 부패의 늪속에 빠져 있고 당일각에서는 이같은 여야 공조비리에 평민당이 깊숙히 개입된데 대해 자탄의 소리가 높기 때문이다.
특히 작년 8월의 총재명의로 서울시와 건설부에 보낸 협조요청 공문으로 당내에서조차 당지도부가 이 사건에 연루돼 있지 않느냐고 전전긍긍하고 있다.
평민당은 사건이 폭로된 초기에는 정면대응하지 않다가 볼똥이 국회건설위로 튀고 평민당 의원에게까지 미치자 뒤늦게 청와대를 물고 들어가는 「물귀신대응」을 보였다. 민주당이 강도높은 공세를 취하면 뒤따라가는 「뒷북대응」에 대해서도 당내외의 눈총이 따갑다.
이번 사건이 한 두명의 공직자 혹은 정치인들이 개입된 단순뇌물사건이 아니라 정치권의 구조적 부패를 드러내는 한 단면이라는 인식이 모자랐던게 아닌가 싶다. 정치권의 부정부패를 앞장서 지적하고 회초리를 들어야할 입장인데도 자체조사 한번없이 화살을 딴 곳으로 돌리게 해서는 납득을 받을 수 없다.
정부·여당쪽의 개입만 문제삼고 내잘못을 덮으려는 태도는 공당이 취할 태도가 아닐뿐더러 자칫 잘못하다간 겉과 속이 다른 정당으로 오인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청와대가 작년 2월 서울시로 보낸 민원서이첩 공문이 비정상적인 절차와 방법으로 집행된 것과 마찬가지로 작년 8월 평민당 총재명의의 협조요청 공문도 정상적인 절차를 거치지 않고 서울시와 건설부에 보낸 것이 확인됐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평민당이 검찰의 수서사건수사를 「공작수사」라고 규정,엑스트라에 불과한 정치권을 반신불수로 만들려고 한다는 주장을 펴기에 앞서 우선 자신의 상처원인을 분명히 파헤쳐 근원을 치료할 용기를 발휘해야 한다.
평민당이 정국을 책임지고 있는 여야의 한쪽 수레바퀴라면 정국이 공멸의 수렁에 더이상 깊이 빠져들기 전에 그리고 정치권이 공중분해되기 전에 스스로 진상을 규명하는 고통을 감내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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