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취재일기

북 인권 끝내 외면한 인권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3면

국가인권위원회(위원장 안경환)는 11일 그동안 논란을 빚어 오던 북한 인권 문제와 관련, "대한민국 정부가 실효적 관할권을 행사하기 어려운 북한지역 내 인권침해 행위는 인권위의 조사 대상에서 배제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안 위원장은 이날 '북한 인권에 대한 입장'이란 발표문에서 "국제법과 국내법을 살펴본 결과 현실적으로 북한 주민을 내국인으로 볼 수 없어 북한 인권에 대해선 인권위의 역할이 제한돼 있다"고 말했다. 이어 "다만 국군 포로, 납북 피해자, 이산가족, 새터민 등의 문제는 대한민국 국민이 직접적 당사자이므로 인권위가 다룰 수 있다"고 덧붙였다.

안 위원장은 또 "정부가 국제법과 헌법에 따라 북한 인권 개선을 위해 노력할 의무가 있다"며 "북한 인권 개선을 위해 국제사회와의 연대.협력을 활성화하고 인도적 지원 사업을 지속하며 재외 탈북자의 강제 송환을 막는 노력을 할 것"을 정부에 제안했다. ▶납북자 가족 지원을 위한 특별법 제정 ▶국군 포로, 납북자 문제 전담 인력 확충 ▶북한 인권 실상에 대한 철저한 조사도 당부했다.

인권위는 유엔인권위가 북한 인권 상황을 규탄하는 결의안을 상정하는 등 북한 인권 개선에 대한 국내외 여론이 높아지자 2003년 북한인권연구팀을 꾸리고 실태 파악에 나섰다. 지난해 12월엔 인권위원 5명으로 구성된 북한인권특위를 구성해 21차례에 걸쳐 논의를 했다. 특위는 올 4월 공식 입장을 낼 예정이었지만 위원들 간 입장 차이로 미뤄오다 이날 전원위에서 최종 입장을 의결한 것이다.

이날 발표문을 내놓기 위해 인권위는 지난 3년여를 고심해 왔지만 끝내 북한 인권 문제를 외면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사실 "북한지역 내 인권 문제는 조사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내용은 이미 예전부터 보여왔던 입장을 재확인한 것에 불과하다. 인권위는 올 9월 공개 처형 위기에 처한 북한 주민 손정남씨에 대한 진정을 "조사 대상이 아니다"라며 각하했기 때문이다.

인권위는 그동안 '보편적 규범으로서의 인권'을 강조해 왔다. 이라크 파병 당시엔 이라크 주민의 인권을 들어 정부에 파병 반대 입장을 밝힌 적도 있다. 인권위는 국가보안법 폐지부터 초등생 일기 검사에 이르기까지 각종 사안에서 '현실'보다는 인권을 앞세운 의견을 개진해 '이상주의 집단'이란 평가까지 받을 정도였다. 하지만 유독 북한 인권 문제만큼은 끝내 소극적인 자세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소위 진보 진영에서 북한 인권 문제를 거론하는 것을 금기시하는 것과 일맥상통하는 측면이 있다.

인권위는 대신 "정부가 북한 인권 개선을 위해 노력할 의무가 있다"며 정부에 국제사회와의 연대를 활성화할 것 등을 제안했다. 하지만 이 역시 지난달 정부가 유엔 북한 인권 결의안에 찬성한 뒤에 나온 것이어서 '뒷북 치기'에 가깝다.

인권위는 2004년부터 매년 1억5000만원의 예산을 들여 북한인권연구팀을 운영해 왔다. 수차례 해외 출장과 국제 심포지엄 등의 활동도 했다. 하지만 이날 발표된 입장에서는 인권위가 그동안 연구.조사한 북한의 인권 실태에 대한 언급을 찾아볼 수 없었다. 인권위의 발표는 "특별한 내용도 없으면서 정부의 눈치만 보면서 시간만 끌었다"는 낙제점을 면키 어려울 것 같다.

한애란 사회부문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