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드위치 요르단 줄타기 외교/원조 중단되자 “더 기대할 것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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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중립입장 포기 이라크 지지 표명
걸프전쟁에서 표면상 중립적 태도를 취하면서 은근히 이라크에 동조적이었던 요르단에 대해 미국이 노골적으로 비난하고 나섬으로써 반이라크 아랍동맹이 분열될 위험에 처했다.
부시 미 대통령은 8일 이라크를 지원하고 있는 요르단에 대해 강도높게 비난하고 5천5백만달러의 원조를 중지시키겠다고 위협했다.
부시 대통령의 이같은 강경한 비난은 이번주초 후세인 국왕이 이라크를 두둔하는 연설을 한데 이어 나온 것이다.
후세인 국왕은 걸프전 개전이래 처음 행한 대국민 연설에서 다국적군의 이라크에 대한 공습이 이라크 뿐만이 아닌 전아랍·회교도들에 대한 공격이라고 비난했다.
이에 대해 부시 대통령은 『요르단이 중립을 포기한 것』이라고 지적하고 『미국에 상당한 우려를 안겨줬다』고 말했다.
후세인 국왕은 걸프전 시작이래 대서방 유대를 고려,중립을 표방하면서도 이라크에 대해 상당히 동정적인 입장을 취해 온 것이 사실이다.
후세인 국왕은 한쪽으로는 팔레스타인인이 다수인 국민들로부터 친이라크 노선의 압력을 받으면서도 다른 한쪽으로는 경제지원의 후견인인 서방의 압력에 눌려 지금까지는 양쪽 눈치를 항상 살피는 줄타기 외교를 벌여야하는 입장이었다.
결국 이번 그의 연설은 친이라크 입장을 분명히하는 자세로 돌아선 것으로 미국쪽에 의해 해석된 것으로 보인다.
요르단으로서는 그동안 사실상 서방원조가 중단된 상태이므로 더이상 기대할 것이 없다는 판단을 내린 것 같다고 전문가들은 풀이한다.
서방국가로부터의 원조가 끊김으로써 요르단은 거의 파산국가의 상태로까지 몰리고 있는 상황으로 알려져있다.
실질임금은 3분의 1로 줄어들고 실업률도 15%까지 치솟았다.
이나마도 원조중단이 계속될 경우 실업률은 40%를 상회할 전망이다.
이와 같은 「출혈」을 무릅쓰고 후세인 국왕이 친이라크 입장을 분명히 한데는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가들의 무성의가 큰 몫으로 작용했다.
중립을 유지하면 상당한 「대가」를 제공하겠다는 당초의 약속과는 달리 미국등 서방국가들은 이렇다할 도움을 주지 않았다고 요르단은 야속해 하고있다.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로부터의 원조는 후세인 국왕의 친이라크적인 태도로 그동안 사실상 중단됐고 유럽국가들로부터의 원조도 「확실한 보장」이 전혀 없는 상태다.
게다가 요르단의 유일한 숨통인 아카바항도 사실상 봉쇄된 상태여서 요르단의 경제악화를 부채질하고 있다.
현재 요르단의 의약품 수입은 전면 보류되고 있을뿐만 아니라 식량수입조차 여의치 않다.
이와 같은 경제악화가 국민들의 불만을 촉발,후세인 국왕의 「입장정리」를 재촉했다고 보는 견해가 유력하다.
요르단 국민들의 심정은 이제까지 알려진 친이라크 입장을 훨씬 넘어서는 강도에 이르러있다.
즉 이라크를 지지하는데 그치지 않는 이라크의 「성전」을 위해서라면 어떤 어려움이라도 감수하겠다는 입장과 함께 팔레스타인인들의 인티파다(이스라엘에 대한 봉기)와 이라크를 위해 모금운동을 전개하는 등 적극적인 개입으로까지 발전해가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미·요르단 관계악화는 그동안 반이라크 전선에 아랍국가들을 참여케 함으로써 미국과 아랍의 전쟁이 아닌 다국적군과 이라크의 전쟁으로 몰고가려던 미국의 의도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진세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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