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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정노력 희미한 국회/문일현 정치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뇌물외유 관련 세 의원에 대한 사법처리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로 등장한 가운데 28일 국회의장의 대 국민 사과문이 발표됐다.
박준규 국회의장이 의장단회의를 거쳐 발표한 이 사과문은 이번 사건에 대해 입법부 수장으로서 심심한 사과와 유감을 표명하고 유사한 사건의 재발을 막기 위해 의원윤리강령 제정과 윤리위원회를 구성하며 의원외유는 공사를 막론하고 엄격한 사전심사를 거쳐 허용토록 하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면서 박의장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국회는 자정노력을 계속할 각오인만큼 국민과 정부는 3권분립을 존중하는 의미에서라도 「시간과 아량」을 갖고 지켜봐달라고 호소했다. 다시 말해 이번 사건은 잘못된 행위임이 분명하고 또 뇌물외유건을 지켜보는 국민들의 질타가 어느 수위에 달해 있는지 익히 알고 있지마는 앞으로는 제대로 할테니 이번 만큼은 봐달라는 간곡한 호소인 셈이다. 대신 이번 임시국회에서 제도적 보완장치를 마련해 이런 일이 재발치 않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국회의장이 직접 나서서 국민앞에 사과까지 하며 국민들의 이해를 호소한 것은 위기에 몰린 국회의 자정노력의 하나이며 정치적 수습을 위한 수순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국회의장의 이같은 정치적 수습노력은 여러가지면에서 납득할 수 없는 전제들을 근거로 삼고 있다는 지적이다.
우선 법적용에 있어 형평의 원칙을 무시하고 있다. 일반 공무원들은 단돈 몇푼만 챙기다 적발되면 두말할 필요없이 파면·구속되는 것은 불문가지이고 뇌물이 아니더라도 업자로부터 술대접만 받아도 목이 날아가는 판에 국회의원들이라고 해서 유독 치외법권을 인정해 달라는 요구는 아무래도 설득력이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백보를 양보해서 정치적인 「특별사면」을 해준다고 하더라도 당장 대학입시 부정으로 구속된 교수와 학부모들이 『다시는 안그럴테니 우리도 봐달라』고 할 경우 사법당국이 어떤 식으로 대응하려는지 모르겠다. 이런 상황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면 추상같아야 할 법체통이 과연 유지될 수 있겠느냐는 점이다.
또 국회가 3권분립을 이유로 들어 사직당국의 조치를 자제해달라고 요청하려면 최소한 국정조사권을 발동하든가 자체조사를 통해 잘못된 관례들을 파헤치고 사법조치 못지않게 국회차원의 강력한 제재조치를 대안으로 제시해야 옳다.
국회의장의 사과 회견이 있은지 한시간 후에 열린 본회의장에서 의장과 의원사이에 다시 질 낮은 고함이 터지고 정회소동이 일어나는걸 보면 국회가 정녕코 자체정화노력을 하고 있다고 보기 어려운 느낌을 금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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