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유방류… 생태계 볼모/“오염테러”후세인의 저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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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이라크,8년전쟁때 경험… 상륙작전 저지/「벼랑끝 심리」서 나온 지상전 유인 분석도
이라크가 무슨이유로 쿠웨이트에 저장중인 막대한 양의 원유를 걸프해에 흘려 보냈을까에 대한 분석들이 나오고 있다.
미 국방부의 공개적인 부인에도 불구하고 이번 원유유출이 다국적군의 상륙전을 저지시키려는 군사적 목적을 띠고 있는 것이라는 분석이 있는가 하면,이스라엘에 대해 스커드미사일을 공격하는 것과 같이 군사적 목적보다는 정치적·심리적 목적을 노린 행동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또 일부에서는 전략·전술적 해석보다는 사담 후세인이 『전쟁에 도움이 되는 일은 무엇이든 다 한다』는 소위 「벼랑끝 심리」에서 선택한 한 수단이라고 보기도 한다.
이번 원유방출이 이스라엘 민간인에 대한 미사일 공격이나 포로가 된 다국적군 조종사들을 TV에 내세우는 것과 비슷하게 서방세계의 눈으로는 「비이성적」인 것으로 비칠 지 모르나,후세인 자신이나 중동인들에게는 이라크를 보호하기 위한 「가능한 수단」으로 인식될 수도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즉 바그다드가 공습으로 폐허화한 마당에 그만한 오염은 별문제가 아니라는 판단하에 죄의식없이 모든 수단을 동원하고 있다는 것이다.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이나 국방부관계자들은 이번 원유방출이 연합군의 군사작전에 전혀 지장을 주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으나,일부에서는 이번 원유 유출로 다국적군의 쿠웨이트에 대한 상륙작전이나 걸프해상함대의 기동에 영향을 줄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이들은 이라크가 이란과의 전쟁때도 원유를 방류,지상 방어선을 쳤던 사실을 지적,이번에 해상에 이같은 시도를 하고 있다고 보고있다.
이라크는 이란과의 전쟁때 이라크 제2도시 바스라시 동쪽에 방어참호를 파고 이곳에 무려 4억입방m의 원유를 부어 이란의 공격을 저지한 적이 있다.
세계전쟁사에서 최초로 원유를 전쟁에 이용했던 이라크의 전략가들은 이를 원용하여 이번엔 해상에 원유방어망을 구축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넓은 기름띠가 해상에 쳐짐으로써 다국적군 해병대의 상륙작전을 늦추거나 상륙지점이 바뀔수 있으며,모든 함정이 바닷물을 정수,식수와 엔진의 공업용수로 사용하고 있으므로 이들도 큰 타격을 입게된다는 것이다.
또 해안이나 해상에 덮인 원유를 직접 불을 붙이기는 어렵지만 여기에 휘발유 등을 부을 경우 연소가 가능하므로 화공으로 다국적군의 상륙을 저지할 수 있다.
이러한 가능성에 대해 미 국방부관계자들은 함대의 용수는 해저에서 채취하고 있고 상륙정이나 수륙양용장갑차등이 기름띠에 지장을 받지 않으며,방출 원유는 시간이 흐를수록 인화가 어렵다는 점을 들어 원유방출의 군사적 효용성에 대해 회의적이다.
부시대통령이 『환경에 대한 테러행위』라고 규정했듯이 이라크는 바닷물을 오염시킴으로써 이를 정수하여 식수로 사용하고 있는 사우디아라비아 등에 타격을 주려는 계산인 것 같다.
또 원유방출로 걸프일대의 환경이 오염될 경우 서방국가의 환경보호주의자나 반전주의자들의 평화적해결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더 높아져 세계여론을 바꾸어 놓을 수 있다고 기대할 수도 있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예상밖의 행동을 저지름으로써 부시대통령으로 하여금 조급하게 지상전을 결심하게 만들어 타격을 주자는 속셈도 있다고 보는 분석도 있다.
레스애스핀 미하원 군사위원장은 『후세인은 우리의 분노를 가능한한 많이 도발,우리로 하여금 지상전을 빨리 시작하도록 유인하고 있다』면서,이번 원유방출작전은 이스라엘 미사일 공습이나 포로조종사 학대등과 같은 성격의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서방측의 대 이라크 경제봉쇄로 어차피 상품가치도 없는 무궁무진한 원유를 이용하여 다국적군의 허점을 찌를수 있다면 후세인으로서는 나중은 어떻게 되든 현재로선 하나의 「전술적 승리」라고 볼 수 있겠다.<워싱턴=문창극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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