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고된 전쟁」에 대응 미흡/걸프전 1주… 대처 잘하고 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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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1·2차 석유위기」 교훈 못살려/정부­기업 공조·위기관리 허점
걸프전쟁이 확대·장기화의 조짐을 보이면서 여러가지 경제적 대응에 대한 재검토가 요청되고 있다.
현재 국내 원유비축은 3개월분 정도로 아직 걱정할 상황은 아니다. 특히 작년말 이후 개전이 예고되면서 중동지역에서의 선적을 앞당긴 결과 현재 원유비축은 평상시보다 15일 정도 더 늘어난 93일분이 됐다.
이는 80년 2차 석유파동때 재고가 20일을 넘지 못했고 비축기지 조차 하나 없던 상황과 견주어 보면 당시의 경험이 좋은 약이 된 셈이다.
그러나 정부나 기업들의 유기적 대응체제가 아직 마련되지 않는등 허점도 적지 않다.
이번 전쟁처럼 국제정세가 급변할 경우 가장 주요한 일은 정보의 원활한 수집·유통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작년 8월 중동사태 발발이후 정부나 기업간에 상황별 시나리오에 대한 협의나 대응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정부는 정부대로 기업은 기업대로 각자 갖고 있는 정보내에서 대응책을 마련해왔을 뿐이다. 있는 정보마저 유기적 공조체제가 이뤄지지 않았으며 이같은 상황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여기에 정부는 단계별 대응방안을 전쟁이 예고된지 한참후인 지난 11일에야 자동차 10부제 운행등 1단계 조치를 발표하면서 내놓았다.
비상사태일수록 대비를 잘하려면 장래에 대한 예측가능성이 높아야한다. 그러나 정부 또는 기업의 정보독점으로 사태를 매끄럽게 풀어나가지 못했다.
또 에너지정책의 경우도 1,2차 석유파동 이후를 둘러보면 아직 고쳐야할 점들이 많다.
정부는 지난 88년 에너지이용 합리화법을 개정,그때까지 있던 정부의 규제를 대폭 완화해버렸다.
에너지절약은 국민과 기업의 자율에 맡기는데 한계가 있기 마련이어서 일정한 범위내의 정부의 강제는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정부는 작년 8월 이후 법을 다시 강화할 시간적 여유가 있었는데도 이를 준비조차 못했다.
이와 함께 경제운용전반에 대해서도 위기관리에 대한 인식부족이 드러나고 있다.
이번 전쟁의 단기전화 기대가 줄어들면서 세계경제의 침체 가속화등으로 국내에도 스태그플레이션의 위험은 높아가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작년말 공공요금을 대폭 상향조정,이것이 방아쇠로 작용해 연초이후 각종 서비스요금인상등이 가속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물론 공공요금 인상은 나름대로 타당성이 있지만 이왕 올릴 것이라면 중동사태 발발직후인 작년 여름께로 앞당겨 충격을 서서히 흡수하는 방안도 있었다.
걸프사태가 「예고된 전쟁」임에도 불구하고 이같은 단견들이 누적돼 정책의 효율성을 급격히 떨어뜨리고 있는 것이다.
에너지절약과 관련된 산업구조 조정만 해도 일본은 2차석유파동때 이를 잘 극복,오늘의 위치를 확보하는 결정적 계기를 마련했다. 우리의 경우도 2차 오일쇼크후 업종별 에너지 원단위제 방안등을 마련했으나 지금은 어느 책상서랍속에 들어가 있는지 알길이 없는 형편이다.
국가나 기업이나 조직의 능력은 위기관리에서 더 잘 드러나는 법이다.
1,2차 석유위기의 경험을 다시 살려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장성효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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