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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로 '노 골드'의 치욕 도하의 '금 4개'로 설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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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카이로에서 도하로 오는 길은 멀고도 험했다. 지난해 이집트 카이로에서 열린 세계유도선수권에서 안병근(사진) 감독은 한국 유도의 역적이 됐다. 그가 이끄는 한국 남자팀이 달랑 동메달 하나에 그쳤기 때문이다. 일본과 더불어 유도 수퍼파워인 한국이 1975년 이후 거둔 성적 중 최악이었다.

그때 그는 며칠간 잠을 못 자고 밥도 못 먹었다. 그는 지고는 못 사는 성격이다. 두 살 때 어머니를 여의고 간장행상을 하는 아버지 밑에서 라면을 먹고 컸고, 간염에 걸려 구토를 하면서도 끝내 이를 극복하고 1984년 LA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던 그다.

이후 안 감독은 이슬람 교도들이 메카를 생각하듯 지난 1년 동안 힘들 때마다 카이로 참패를 되새겼다. 그가 생각한 패인은 정보 부족이었다.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이후 8년여 동안 대표팀에서 나와 있으면서 감각이 떨어졌었습니다. 현대 유도와 상대 선수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필요했어요."

해외에서 열린 대회 비디오를 구해 보고, 특히 일본을 이기기 위해 일본 전지훈련을 세 차례나 다녀왔다. '이제 한국 유도는 끝난 게 아닌가'라고 불안해하던 선수들을 때론 형처럼 다독이고, 때론 호랑이처럼 다그치면서 기술을 키웠다. 선수들은 한결같이 "안 감독님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말했다.

이번 대회에서 한국 남자는 장성호.황희태.이원희.김성범 등이 4개의 금메달을 획득했다. 장성호는 한국 선수단 첫 금메달이었고, 이원희는 그랜드슬램을 완성하는 금메달, 그리고 김성범은 한국 최초의 무제한급 금메달이었다. 알토란 같은 금메달을 따낼 때마다 안 감독은 마치 자신의 일인 양 펄쩍펄쩍 뛰며 기뻐했다.

유도인들과 선수들은 금메달 4개는 '안병근 작품'이라고 입을 모은다. 남자는 일본이 2개, 몽골이 2개의 금메달을 가져갔다. 중국 남자는 금메달이 없었고 여자만 5개의 금메달을 땄다.

"현역 시절엔 계란 하나에 목숨을 걸고, 배가 고파 대표팀에 들어오고 싶을 정도로 어려웠지만 이제 헝그리 정신의 시대는 갔다"는 안 감독은 "동네에 유도장도 더 생기고 실업팀도 더 생기고 선수들이 더 인정받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도하=성호준 기자 <karis@joongang.co.kr>
사진=변선구 기자 <sunnin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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