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최고의 프리마돈나 프라이스 돌연 은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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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오페라 계에「제2의 대처」가 탄생했다. 아니 사라졌다고 해야 옳을 것인가.
로자 폰셀 이래 미국 최고의 프리마 돈나로 군림하면서 오페라 팬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아온 레온타인 프라이스(63)가 최근 홀연히 무대를 떠난 것이다.
특출한 힘과 해맑음, 그리고 풍부한 톤을 자랑하던 목소리가 조금도 녹슬지 않고 인기 또한 절정인 상태에서 나온 은퇴인 까닭에 팬들에게 주는 충격과 아쉬움도 그만큼 컸다.
어찌 보면 정치적인 해거름에 접어들 즈음 퇴진한 대처 영국총리를 인기절정의 시기에 물러난 프라이스와 맞비긴다는 게 적절치 못한 일인지도 모른다.
더욱이 소녀시절 도서관에서 베르디의 오페라『아이다』를 우연히 접하고 나서 홀딱 반해 흑인으로서는 감히 넘보기조차 어렵다던 오페라 계에 뛰어들어 각고 끝에 일궈낸 정상의 자리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따라서 그녀의 돌연한 은퇴는 자못 구구한 뒷말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정작 프라이스가 내뱉은 은퇴의 변은 너무나 간단하다.
『최고봉에 올랐을 때 떠나기로 이미 마음먹고 있었다』는 것이다. 오페라가 자신을 버린게 아니라 스스로 택한 시점에서 떠났노라는 말도 했다.
현역시절 최상의 컨디션이 아니면 그 어떤 조건을 내걸고 출연요청을 하더라도 단호하게 거절했을 만큼 까다로웠던 프라이스의 말치고는 여간 뜻밖이 아니다.
미국남부 미시시피주 출신의 시골뜨기 흑인소녀가 오페라 계를 기웃거린다는 것 자체가 애당초 험로를 예고해 주는 것이었다. 프라이스도 이를 산꼭대기에 오르고 나서야 올라온 길의 험난함에 놀랐었다고 비유한 적이 있었다.
무대일정에 쫓겨 절제해야 했던「속엣 말」들을 모아 퍼내려는 그녀 자신의자서전 이름이 『역경을 극복하는 길』인 것만 봐도 그녀가 걸어온 이력을 짐작할만하다.
은퇴 후 가진 어느 인터뷰에서 밝혔듯이 이제 프라이스는 무대에 쏟아지던 박수소리와 환호성을 뒤로한 채 제2, 제3의 프라이스를 빚어내기 위해 후진양성에 못 다한 정열을 쏟고있다.
『어느 누구도 내가 오페라무대에서 버림받고 은퇴했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정상의 위치에서 홀연히 무대를 떠난 프라이스는 음악교육자로서 가수 못지 않은 업적을 남길 것이 분명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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