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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 동의 없이 의료비 내역 내라니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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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의료계에서 더욱 심각하게 생각하는 것은 환자의 정보 보호 문제다. 정신과.산부인과.비뇨기과 질환 등은 환자가 가족에게도 알리기를 꺼린다. 자칫 정보가 유출될 경우 본인의 심적 고통이 큰 것은 물론이고 직장 상실, 가정 파탄을 부를 수도 있다. 환자의 권리를 지키는 것이 의무인 의사로선 이 부분의 문제점이 해결되지 않으면 환자의 자료를 남에게 제공할 수 없는 것이다.

지난달 28일 열린 대한의사협회 연석회의에서도 이 부분에 대한 난상토론이 있었다. 여기서 의료계는 개인정보 유출로 인한 법적 문제를 국세청이 책임진다는 데 국세청이 동의한다면 자료 제출에 협조하기로 결론을 내렸다. 국민 여러분께 묻고 싶다. 자신에게 묻지도 않고 자신의 의료 기록이 국세청에 들어가고 아무나 홈페이지에 접속해 귀하의 주민등록번호만 입력하면 진료 내역을 알 수 있게 된다면 납득할 수 있겠는가.

정부에도 묻고 싶다. 환자의 권리를 지켜야 할 의사에게 사생활 자유를 보장하는 헌법 규정과 환자 질병기록 보안을 규정한 의료법, 개인정보 유출 거래를 금지한 정보통신법, 업무상 비밀 누설을 금지한 형법, 그리고 환자 비밀보호를 규정한 의사윤리강령과 히포크라테스 선서 등을 위반하도록 요구할 만큼 연말정산 간소화가 중차대한 시책인가.

경만호 서울특별시의사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