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조원짜리 선거(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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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올봄 지방의회선거는 아무리 적게 잡아도 3조원 이상은 들 것이라고 한다. 설마 하겠지만 따져보면 그보다 더 들면 들었지 줄 것 같지 않다. 선거 한번 질탕하게 치르게 되었다.
우선 광역의회의 경우,의원수가 8백66명. 후보자의 경쟁률을 5대 1로 예상해도 대충 4천3백명이 나선다. 벌써 「5당3락」이라는 얘기가 떠돌고 있다. 당선권에 들려면 5억원은 써야한다는 것이다. 후보들은 이래저래 평균 3억원은 뿌려야할 모양이다. 그 돈을 합쳐보면 자그마치 1조3천억원이 된다.
여기에 기초의회선거가 또 있다. 의원수는 4천2백87명. 여기서도 경쟁률을 대충 5대 1쯤으로 보면 무려 2만1천5백명의 후보가 나설 것이다. 이들이라고 앉아서 당선될리는 없다. 아무리 못써도 한 후보가 평균 1억원씩은 뿌릴 것이다. 그 비용을 모두 합하면 2조1천억원쯤 된다.
올봄에 선거자금으로 전국에서 쏟아질 돈은 어림잡아 3조4천억원이다. 이것은 그나마 점잖은 선거를 치를 경우의 얘기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선 아직 점잖은 선거는 본 일이 없다. 날이 갈수록 난장판으로 바뀌는 것이 우리의 선거풍경이다. 지난번 대통령선거가 바로 그런 「모범」을 보여 주었다.
결국 올 봄의 지방의회선거는 그럭저럭 5조원쯤은 든다고 보는 것이 현실에 가깝다. 5조원은 아무리 돈값이 없는 세상이라지만 금년 예산의 18%,우리나라 국민총생산(90GNP=1백52조원)의 3.3% 비중이다. 경제성장률이 1%만 떨어져도 온나라가 한숨을 내쉬어야 하는 마당에 그것은 어마어마한 액수임엔 틀림없다.
지금 돈 많이 드는 지방자치제는 그만두자는 말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우리의 지방자치는 늦어도 한참 늦었다. 민주주의를 하자면서 지방자치를 그만두자면 「스위트 홈」을 갈망하면서 결혼은 안하겠다는 말과 같다.
문제는 선거의 수준이다. 깨끗한 선거가 치러 지지않으면 민주주의도 망가지고 경제도 망가질 것이다. 깨끗한 선거의 조건은 두가지다. 하나는 깨끗한 후보가 나와야 한다. 정치건달,이권에 눈이 벌건 사람,투기꾼은 깨끗한 후보가 아니다. 둘째는 돈보다 사람을 중시하는 선거풍토다.
그런 선거를 치를줄 알아야 민주시민이다. 이번 선거는 우리의 민주주의와 경제를 살리느냐,죽이느냐의 의미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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