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델리 7관왕 서길산 북한 사격 총감독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7면

"요즘 선수들은 심장이 약해. 뭘 하겠다는 의지도 부족하고…."

4일(한국시간) 카타르 도하 루세일 사격장. 기대를 걸었던 김정수가 남자 권총에서 중국 선수에 밀려 은메달에 그치자 북한의 서길산(52) 총감독은 영 못마땅한 표정이었다.

"권총에서 최소한 금메달 1~2개는 따내야 하는데"라며 "악착같이 달라붙는 맛이 없다"고 마뜩잖아 했다.

서 감독은 1982년 뉴델리 아시안게임에서 권총에 걸린 7개의 금메달을 독차지한 '아시아 사격의 영웅'이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그가 기자회견에서 내뱉은 말에 충격을 받았던 것을 기억한다. 서 감독은 명중 비결을 묻는 질문에 "적의 심장을 쏜다는 각오로 했더니 백발백중이 됐다"는 섬뜩한 말을 했다. 남북이 첨예하게 대립하던 시절이어서 이 발언은 국내 언론에 크게 보도돼 국민적 공분을 사기도 했다.

적개심에 이글거리던 서 감독의 눈매는 지금 많이 풀어져 있었다. 얼굴에 잔주름도 꽤 파였다.

"그때 김일성 주석님께 환대를 받았지요. '영웅체육인' 칭호에다 주석님 '존함 시계'(시계에 이름 석 자만 새김)를 받았으니까. 주석님이 '잘했다. 너는 영웅이다. 이제 일평생 먹고 놀아도 된다'며 등을 두드려 주셨습니다."

서 감독은 그 시계를 차고 다니지 못한다고 했다.

"어떻게 차고 다닙니까. 집안에 가보로 보관했다가 자식에게 물려 줘야지요."

화제를 요즘 젊은 선수들에게로 돌린 서 감독은 "당에 대한 충성심이 옛날 우리 때만 못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래서 선수들에게 자주 정신교육을 한다고 했다.

1995년 현역에서 물러난 서 감독은 현재 군인 신분(상좌.우리의 대령급)으로 평양에서 후진들을 양성하고 있다고 했다. 1남1녀 중 장남(22)은 의과대학에 재학 중이고 딸(18)은 요리학교에 다닌다.

"뉴델리 당시의 발언을 기억하느냐"고 묻자 빙그레 웃더니 "그때는 혈기왕성했고…"라고 말끝을 흐렸다. "요즘은 선수들 성적 신경 쓰느라 심장이 많이 약해졌다"며 말을 돌렸다.

도하=신동재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