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사는 사회로 나가자/이젠 달라져야 한다:3(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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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지난해 우리들은 흉악범죄를 비롯한 사회의 갖가지 타락상을 몸으로 직접 겪으면서 그동안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몇가지 값진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첫째로 그것은 경제적 발전이 그대로 삶의 질까지 보장해 주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었다.
돈을 얻기 위해선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어린이도 태연하게 생매장하는 살벌한 세태에서 우리들은 올바른 가치관과 도덕성이 수반되지 않는 물질적 추구는 오히려 사회적 재앙이 될 수도 있음을 절감할 수 있었다.
둘째로,우리들은 우리 사회의 도덕적 타락이 결코 특정부류의 사람들이나 특정부문에 국한된 것이 아닌,사회 전반적으로 미만된 보편적인 현상임을 인식할 수 있었다. 국회의원들이 조직깡패의 구명운동에 나서고 판·검사가 깡패와 뒤섞여 술을 나눈 사건 등은 바로 그러한 현상을 웅변해 주는 단적인 예였다.
셋째로,따라서 흉악범죄를 비롯한 우리 사회의 불법과 폭력,그리고 무질서를 공권력의 물리적 힘만으로 대응하려는 것은 한계에 부닥칠 수 밖에 없으며 우리 사회 모든 부문에서의 도덕적 각성이 선행되어야 할 과제임을 일깨워 주었다.
「범죄와의 전쟁」이란 극단적인 표현까지 동원하고도 끝내 국민을 안심시킬만한 성과를 거두지 못한 치안력이 그것을 입증해 주고 있다. 중앙일보 조사에 따르면 「범죄와의 전쟁」이후 범죄가 다소나마 줄었다고 느끼는 국민은 고작 16%밖에 안되고 77%의 국민은 마찬가지거나 오히려 늘었다고 느끼고 있는 형편이다.
이런 점들을 놓고 볼 때 올해 우리들이 해결해야 할 사회적 목표와 과제는 명백하다고 할 수 있다. 무턱댄 치달음이 결코 삶의 질을 보장해 주는 것은 아니며 사회의 갖가지 문제들이 어느 누구의 잘못 때문이 아니라 우리들 모두가 함께 책임질 문제라면 문제해결은 우선 사회 각 부문이 도덕적 각성을 새로이 하는데서부터 출발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는 전망이 어둡지만은 않다고 본다. 최근 우리 사회 곳곳에서 도덕성의 위기를 우려하는 목소리들이 나오고 있는데,그것은 뒤집어 말하면 우리들이 이미 도덕적 각성을 새로이 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뜻하기도 하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 사회 각 부문이 도덕적 각성을 새로이 함에 있어서 누구보다도 앞장 서야 할 것은 국가권력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국가권력의 도덕성이야말로 그 사회의 도덕적 기준이자 지표이기 때문이다. 가령 「범죄와의 전쟁」을 벌인다고 하지만 그 공권력부터가 내부적인 문제를 안고 있어 도덕적 신뢰성을 상실한다면 그 전쟁은 하나마나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들은 불행히도 지난해 범죄와의 전쟁에 나선 공권력 자체가 범죄에 유착되고 정치권력에 의해 굴절된 사례들을 목격한 바 있다. 지난해 벌인 범죄와의 전쟁 성과가 국민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던 근본원인도 바로 거기에 있었다고 우리는 믿고 있다.
따라서 올해는 무엇보다도 먼저 권력 스스로가 내부정비부터 서둘러야 한다. 그래서 국가권력부터가 과거와는 다른 의지와 자세를 갖추고 있음을 국민들이 피부로 느낄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
곧 있을 지자제선거는 과연 권력이 그 도덕적 신뢰를 받을 수 있을 것이냐 아니냐를 판가름 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국민들과 출마자들에게는 공명선거를 요구하면서도 스스로는 편파적인 법집행을 한다면 지난날에 그랬듯이 권력의 도덕성은 그 기반부터 흔들려 버릴 것이다.
앞서야 할 것이 권력부터 도덕성을 확립해야 하는 일임은 분명하지만 그것만으로 우리 사회의 도덕적 위기가 해소되리라고 보지는 않았다. 냉혹한 경쟁사회와 돈이 전부라는 식의 물신주의속에서 살아오는 동안 우리들 모두가 너나없이 도덕성의 현실적 의미에 대해 둔감해 있다.
더구나 6·29이후 지난 3년간 우리들은 억눌렸던 욕구를 일시에 분출시키고 경쟁사회속에서 극대화된 이기주의를 더욱 첨예화해서 우리 사회의 문제를 악화시켜 왔다. 흉악범죄의 사회적 바탕이 되고 있는 상대적 박탈감과 향락적 풍토만 해도 그것이 어느 개인의 잘못 때문이랄 수는 없으나 우리들 모두가 사회여건이나 주위의 눈길에는 아랑곳없이 그것을 묵인하고 또 조장해왔던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우리 사회의 온갖 혼란과 무질서는 욕구의 조절기능이 상실된데 있다고도 말할 수 있다. 그 어떤 풍요로운 사회로 인간의 무한한 욕구를 충족시킬 수 없는 것인 이상 우리들 개개인이 욕구의 자기조절 속에서 삶의 가치와 보람을 추구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들이 범죄없고 질서있는 사회를 희구한다면 남을 탓하기에 앞서 우리들 스스로부터 달라진 자세를 보여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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