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경기로 문닫는 미 한인상점 속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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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뉴욕등 심각… 매상격감,2∼3년간 2,500곳 폐업/교포들끼리 지나친 가격경쟁도 문제
지난 1일 조시 부시 대통령도 공개시인한 미국의 경기후퇴로 교포업자들도 타격이 크다. 특히 불경기 여파가 심각한 동북부·뉴욕에 자리잡은 교포상인들은 최근 매상이 급격히 감소,점포세를 못내거나 적자를 더이상 견딜 수 없어 문을 닫는 사례가 늘고 있다.
뉴욕의 한국 교포업계에 따르면 2∼3년전 1만여개에 이르렀던 한국교포 점포수는 최근 7천5백여개로 줄었다.
한국인들이 주로 운영하고 있는 업종은 청과상·세탁소·주류판매·생선가게·의류상 등 대부분 가족경영이 가능한 것들이다.
청과상·생선가게·세탁소 등의 분야는 80년대 미국 이민붐이 일어난후 한국인들의 진출이 부쩍늘어 뉴욕지역상권을 거의 한국인들이 장악할 정도가 됐다.
그러나 1천3백개에 달하는 청과상중 10%에 이르는 1백여개 점포가 올겨울을 넘기지 못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고 네일살롱(손·발톱미장원)·장신구점·선물가게 등도 비슷한 상황에 놓여있다.
뉴욕 맨해턴 32가 CC백화점 주인 정해준씨(55)는 『지난해 봄부터 매상이 줄어들기 시작해 10월한달동안 30%나 줄었고 이는 88년의 50%수준밖에 안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씨는 『경기가 회복될때까지 점포세와 인건비만 건져도 다행』이라며 『이번 구정을 넘기면 20∼30%의 교포업소가 문을 닫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같은 어려움은 10여만개에 이르는 뉴욕의 소매상들이 다같이 겪고 있는 상황이지만 한국교포업소등은 불경기에 제일먼저 타격을 받는 흑인등 저소득층을 상대로 하고 있어 그영향이 먼저 느껴지고 있다.
교포업소들이 불경기에 흔들리게 되는데는 교포들끼리의 지나친 경쟁도 한 요인이다.
80년대 교포인구가 늘면서 특정지역에서 장사가 잘되면 너도나도 몰려 서로 출혈을 하는 가격경쟁을 벌이게 되었고 교포들의 한 지역집중은 점포세를 올려 불경기에 취약하게된 것이다.
한국에서 빌딩을 팔아 미국에 이민,뉴욕에서 청과상을 하고 있는 백선영씨는 『한국에 있으면 풍족한 생활을 할 수 있었을 텐데 이곳에 와 돈도 못벌고 고생만 하고 있다』며 이제 돌아갈 수도 없다고 푸념했다.
70,80년대 풍요한 생활을 그리며 미국이민길에 올라 뉴욕지역에 정착한 한국인수는 약 30만명. 이들의 2세들까지 합치면 그 수는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상당수의 교포들이 그동안 피나는 노력으로 돈을 벌어 정착에 성공한 것도 사실이고 기반을 닦은 사람도 있으나 아직 그렇지못한 대부분의 교포들에겐 언제까지 계속될지 모르는 불경기가 미국 생활에 성공여부를 결정짓는 시련의 시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뉴욕=박준영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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