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바루기] 서울, 부산, 대전 등…‘등’은 모호하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경제 04면

“서울, 부산, 대전 등을 찾는다.” 두리뭉실하다. 서울·부산·대전 외에 다른 도시도 찾는다는 건지, 서울·부산·대전만 찾는다는 건지 모호하다. 쓴 사람만 알 수 있다. 다른 도시도 찾는 것이었다면 쓴 사람은 나머지 도시를 다 밝힐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거다. 나열된 세 도시만 찾는 것인데도 ‘등’을 붙였다면 습관이다.

‘등’은 이처럼 두 가지 뜻으로 쓰인다. 열거한 대상 외에 더 있거나, 열거한 그것만이거나. 1970년대 후반 발행됐던 월간지 ‘뿌리깊은나무’는 그래서 ‘등’을 사용하지 않는 걸 원칙으로 삼기도 했다. 뜻이 분명하지 않은 건 독자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지금 이 잡지처럼 ‘등’을 안 쓰는 건 불가능해 보인다. 대상을 몇만 열거하는 게 나은 상황도 얼마든지 있다. 그 밖에는 덜 쓰는 게 문장의 모호함을 줄여 준다.

서울, 부산, 대전 세 도시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라면 ‘서울, 부산, 대전을 찾는다’가 좋겠다. 흐름상 ‘등’을 넣는 게 부드럽다면 ‘서울, 부산, 대전 등 세 곳을 찾는다’고 하면 정확해진다.

‘등’은 또 “춤을 추는 등 활기찬 모습을 보였다”에서처럼 ‘는’ 뒤에서도 같은 의미로 쓰인다. 그렇다고 모든 ‘는’ 뒤에 ‘등’이 오는 건 아니다. ‘춤을 추다’의 ‘추다’처럼 움직임을 나타내는 동사 뒤에서만 ‘등’이 와야 자연스럽다.

“담당자가 6명에 불과하는 등”에서 ‘불과하는 등’은 어색하다. ‘불과하다’는 움직임을 나타내지 않는다. 동사가 아니라 상태를 나타내는 말인 형용사다. ‘지나지 않는 등’이라고 하면 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