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죽걸랑 바당에 뿌려도라, 죽어서도 물질허멍 살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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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지난 25일 제주시 한림읍 귀덕2리 어촌계 회관에서 9명의 해녀 은퇴식이 열렸다. [연합뉴스]

지난 25일 제주시 한림읍 귀덕2리 어촌계 회관에서 9명의 해녀 은퇴식이 열렸다. [연합뉴스]

지난 25일 오후 제주시 한림읍 귀덕2리 포구. 제주해녀인 김유생(92)·강두교(91) 할머니가 테왁(물질 도구)을 붙잡고 바다로 헤엄쳐 나갔다.

이날 물질은 둘을 합쳐 148년 경력의 두 해녀가 은퇴식을 앞두고 하는 마지막 작업이었다. 뭍에 있던 은퇴식 참석자들은 두 사람이 소라와 전복 등을 잡아 올릴 때마다 손뼉을 치며 환호했다.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인 제주해녀 은퇴식이 처음으로 열렸다. ㈔제주해녀문화예술연구협회와 귀덕2리 어촌계 등은 이날 ‘마지막 물질’로 명명된 해녀 9명의 은퇴식을 개최했다. 그동안 제주에서 해녀들의 공식 은퇴식이 열린 것은 이날이 처음이다.

이날 두 할머니와 함께 은퇴한 해녀는 김신생(83)·김조자(89)·박정자(86)·부창우(83)·이금순(89)·홍순화(79)·홍희성(86) 등 9명이다. 이들은 과거 물질을 할 때 입었던 전통 해녀 옷인 물적삼과 물소중이를 입고 행사에 참석했다.

김유생 할머니는 이날 물질 후 “나 죽걸랑 소랑 바당에 뿌려도라, 죽어서도 물질허멍 살켜 고라수다”라고 말했다. ‘죽은 뒤 화장해서 바다에 뿌려주면 저승에서도 물질하며 살겠다’라는 의미다. 김 할머니는 한림읍 귀덕2리에서 태어나 15살 때부터 77년을 해녀로 살면서 5명의 자녀를 키웠다.

두 해녀의 마지막 물질이 끝난 뒤에는 은퇴식이 진행됐다. 제주해녀문화예술연구협회와 귀덕2리 어촌계는 은퇴 해녀들에게 공로상을 전달하고, 귀덕2리 마을회와 해녀회는 축하금을 건넸다. 공로상장에는 ‘해녀문화를 계승 발전시키고 제주해녀 고유의 명맥을 유지함에 기여해주신 데 감사하다’라는 문구가 담겼다.

은퇴 해녀들은 한수풀해녀노래보존회의 ‘해녀 아리랑’을 들으며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해녀 아리랑’은 서글퍼도 강직한 모습을 잃지 않는 제주해녀의 모습을 담은 노래다.

제주해녀문화는 2016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된 후 2017년에는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됐다. 또 제주해녀어업은 2015년 국가중요어업유산 제1호로 지정된 데 이어 지난해에는 세계중요농업유산(GIAHS)에 선정됐다.

제주해녀는 1970년 1만4143명에 달했으나 지난해 2938명으로 매년 급감하는 추세다. 이 중 60세 이상 해녀는 87.3%(2565명)에 달한다.

한수풀해녀학교 교장인 김성근 귀덕2리 어촌계장은 “제주도의 보물인 해녀를 위해 사상 첫 은퇴식을 열게 돼 자랑스럽다”며 “앞으로도 매해 은퇴식을 열 예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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