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첫 만인 상소…종잇값도 만만찮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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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1호 25면

영남 선비들, 정조를 울리다

영남 선비들, 정조를 울리다

영남 선비들, 정조를 울리다
이상호 지음
푸른역사

사극에서 종종 보듯, 조선에서 상소는 일상이었다. 관직이 있든 없든 글로써 자기 의견을 임금에게 개진하는 길이 열려 있었다. 하지만 때론 목숨을 걸어야 했다. 정조가 왕위에 오른 1776년, 사도세자의 아들이 왕이 되었으니 그 원통한 사연이 밝혀져야 한다고 생각한 영남 유생 이도현·이응원 부자의 상소도 그랬다. 이들은 결국 역도로 몰려 처형됐다.

16년이 지난 1792년, 사도세자는 여전히 민감한 문제였다. 이 책은 그해 영남 유생 무려 1만57명이 연명한 상소, 조선의 첫 만인소 얘기다. 이 집단 상소가 나온 정치적 상황과 더불어 이를 준비하고 접수하는 구체적 과정을 흥미롭게 전한다. 이를테면 당시는 종이가 고가품. 연명자 전원의 이름을 포함해 상소에 쓸 종이 11축, 즉 2200장을 사는 데 25냥이 들었다. 참고로 당시 한양의 괜찮은 기와집 한 채가 100~150냥쯤이었다고 한다. 실무를 맡은 유생들의 한양 체류비도 든다. 이런 예산 마련을 위해 서원 등 곳곳에서 보내온 돈에 더해 선혜청 대출도 받았다.

상소를 올리기 위한 조직인 소청을 구성하고, 그 대표인 소두를 선출하는 것은 기본.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후보를 제외하고 선택한 후보마다 점을 찍는 복수 투표 방식을 통해서다. 소두에 대한 일종의 회유, 소두가 전·현직 관리가 아닌 경우 성균관의 확인을 거쳐야 하는 절차 등에서 비롯된 난관도 전한다. 마침내 봉입된 상소의 반응은 놀랍다. 정조는 친히 유생들을 불러 상소를 읽게 하고, 이를 들으며 눈물을 흘린다.

책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곧바로 2차·3차 상소를 준비하면서 안팎에서 벌어진 이견과 논쟁을 비롯해 조선의 정치가 예민하고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모습을 생생히 엿보게 한다. 저자는 한국국학진흥원의 책임연구위원. 소청에 참여한 류이좌가 쓴 것으로 여겨지는 『천휘록』을 중심으로 정조실록 등 여러 사료에 바탕한 내용을 대중적으로 읽기 좋게 풀어냈다. 저자는 집단 상소를 ‘운동’으로 보고, 유교를 지향한 조선에서 ‘공론’으로 상소가 지닌 힘을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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