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자금에 마통, 일당 12만원 공장 다닌다" 생활고 겪는 전공의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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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 한 대학병원에 입사하려던 예비 인턴 A(27)씨는 지난 2월 임용 포기서를 냈다. 현재는 편의점 도시락 제조 공장에서 주 5일 아르바이트를 한다. 오후 7시부터 새벽 4시까지 일하고 하루 12만원을 번다. A씨는 “의사 면허를 빼면 아무 경력이 없어 알바 자리를 구하기 쉽지 않은데 어렵게 구했다”라며 “사태가 금방 끝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길어져 한 달 넘게 공장 일을 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부모님 도움을 받지 못하고 학자금 대출에 마이너스 통장까지 빚이 많아 돈을 벌어야 한다”라면서 “일이 익숙지 않고 이 상황이 언제 끝날지 몰라 힘들다”고 했다. 원래 내과를 지원하려고 했던 A씨는 “사람 살리는 일을 하고 싶어 의대에 왔고 내과 의사가 되고 싶었는데, 실망감과 허무함이 크다”라고 했다.

의대 증원에 반발한 전공의 이탈 사태가 지속되고 있는 23일 서울 시내 한 상급종합병원 전공의 사용 공간에 의료진이 지나가고 있다. 뉴시스

의대 증원에 반발한 전공의 이탈 사태가 지속되고 있는 23일 서울 시내 한 상급종합병원 전공의 사용 공간에 의료진이 지나가고 있다. 뉴시스

의정 갈등이 석 달 넘게 장기화하며 파업 전공의들의 생활고도 심각해지고 있다. 대한의사협회 관계자는 23일 “시도 의사회를 통해 파악해보면 전체 전공의(약 1만명) 중 10~20% 정도가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거로 추산된다”라고 했다. 의협은 이런 전공의들의 신청을 받아 1인 1회에 한해 100만원씩 지원하는 사업을 시작했다.

이날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1억5000만원까지 불어난 마이너스 통장 계좌와 가족관계증명서, 의사면허증 사진과 함께 도움을 청하는 글이 올라왔다. 사직 전공의라 밝힌 글쓴이는 ”슬하에 자식이 2명 있다. (병원을) 나올 때 3주면 상황이 타결될 거라고 예상했는데 이제 기약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다”라고 적었다. 이어“와이프는 전업주부로 수입이 없다. 비등록 알바나 소일거리 하며 생활비를 마련하고 있지만 80만원 이상 이자가 매일 쌓이고 마이너스 통장 한도가 턱밑까지 타올라 다급하다”라고 호소했다.

이 전공의는 의협 지원금도 신청했지만, 급한 불을 끄기 위해 도움을 청한다고도 했다. 커뮤니티에는 비슷한 내용의 후원 요청 글이 올라와있다. 한 전공의는 “일회성 노동도 하고 단발성 수익으로 전전하는데 기존 마이너스 통장과 전세대출, 학자금 대출 상환이 자꾸 옥죄어 온다”라며 “아이가 태어나 더 버티기 어렵게 됐다”라며 도움을 구했다. 임현택 의협 회장은 지난 13일 기자화견에서 “눈물나는 사연이 수없이 있다”라며 억대 빚이 생겨 중국집서 최저시급을 받으며 일하는 사직 전공의 사연을 소개하기도 했다.

상당수 전공의는 생활고를 감내하고서라도 버틸 때까지 버티겠다는 입장이다. 의협 관계자는 “가뜩이나 어려운데 복귀하면 구상권을 청구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도 크다”라고 전했다.

그러나 이달 말 입시 계획이 발표되면 생활고 등으로 마음을 돌릴 전공의들이 나올 가능성도 점쳐진다.

서울의 한 대형병원 교수는 “15명의 전공의 중 4년 차 4명이 6월에 복귀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라며 “이달 말이 지나면 무엇을 위해 투쟁하는지 버틸 심리적 동력이 떨어질 거고 경제적 어려움까지 커지면 복귀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전공의들이 주변 눈치를 보지 않고 죄책감 없이 복귀할 수 있도록 완곡하고 부드럽게 행동을 요청해야 한다”라고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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