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부 "채상병 특검, 공수처 존재 부정"…총리보다 세게 野 때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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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부가 21일 국무회의에서 채상병 특검법 재의 요구(대통령 거부권)를 의결한 것과 관련 특검은 “공수처의 존재 이유를 부정하는 것”이라고 야당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박성재 법무부 장관. 연합뉴스

박성재 법무부 장관. 연합뉴스

법무부는 이날 한덕수 국무총리의 국무회의 의결 직후 8페이지 분량의 보도자료를 내고 “특검법안은 국회가 권한을 남용하여 여야 합의 없이 통과시킨 것”이라며 “인권 보장과 헌법 수호의 책무가 있는 대통령으로서는 재의 요구권을 행사할 의무가 있다”고 밝혔다. 한 총리가 모두발언에서 1300자에 걸쳐 밝힌 것보다 정부부처 차원에서 훨씬 세세하게 재의 요구의 필요성을 설명하는 내용이다.

법무부는 먼저 “이 법안은 헌법상 대통령에게 부여된 특별검사 임명권을 사실상 더불어민주당이 행사하게 한다”고 주장했다. “행정부 공무원에 대한 임명권을 행사하는 것은 대통령의 핵심적 권한”인데 “이 법안은 특검 후보자 추천권을 민주당에게만 독점적으로 부여하여, 대통령의 임명권 실질을 침해한다”는 내용이다.

아울러 법무부는 ‘채상병 과실치사 사건’은 경찰에서, ‘은폐·외압 사건’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에서 수사가 진행 중이고, 각 기관 사건 종결 후 검찰의 추가 수사도 예정되어 있다는 점을 지적하며 “기존 수사기관에서 수사를 해보지도 않고 특검을 도입한 전례가 없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9월 채상병 수사 외압 의혹을 고발한 주체가 민주당인 점에 대해서도 법무부는 “고발인이 수사할 검사나 재판할 판사를 선정하는 것과 같은 불공정한 결과를 초래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 경우 실체적 진실의 발견보다는 특정 정당의 의도에 부합하는 결론을 도출하기 위한 수사를 진행하는 등 정치적 중립성 확보가 불가능할 것이 명백하다”고 덧붙였다.

법무부는 그러면서 “다수당의 정파성이 입법부의 숙의 절차를 집어삼킨 결과로서 헌법상 민주주의 원리를 크게 훼손했다”고 주장했다. 지난 2일 민주당 등 야당이 국회 본회의에서 법안을 일방 처리함으로써 “입법부의 의사 합일 과정이 형해화되고 다수당의 정파성이 법률에 그대로 반영되었다”는 것이다.

한덕수 국무총리가 2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채상병 특검법 거부권 관련 발언을 하고 있다. 뉴시스

한덕수 국무총리가 2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채상병 특검법 거부권 관련 발언을 하고 있다. 뉴시스

한덕수 발언보다 센 법무부…“민주당, 공수처 일방 설치”

법무부의 이날 보도자료에는 한 총리의 모두발언에 포함되지 않은 비교적 수위 높인 표현도 다수 담겼다. 통상 정부부처가 정치적 발언을 삼가는 관례와 달랐다. 예컨대 “기존 수사기관에서 수사를 해보지도 않고 특검을 도입한 전례가 없다”는 주장을 하면서 공수처와 민주당의 관계를 부각한 게 대표적이다.

법무부는 공수처가 채상병 수사 외압 사건을 담당 중인 걸 언급하며 “공수처는 지난 정부에서 민주당이 검찰개혁의 핵심이라는 기치 아래 제1호 공약으로 안건 신속처리 제도(패스트트랙)까지 동원하여 일방적으로 설치한 수사 기구”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법무부는 2019년 공수처 설치법 추진 당시 민주당의 대변인 브리핑 내용까지 여럿 인용했다.

“공수처 설치는 권력형 범죄에 대한 국민적 공분을 해소할 수 있는 디딤돌이 될 것”(홍익표 수석대변인), “공수처 설치로 정치적 손해를 보는 쪽은 야당이 아닌 정부와 여당”(박찬대 원내대변인) 등이다.

법무부는 이를 열거한 뒤 “공수처 도입 취지에 비추어 볼 때, 특검 도입으로 수사가 중단되는 것은 공수처의 존재 이유를 부정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법무부는 “법안이 삼권분립 원칙에 위반된다”, “공정성 확보가 불가능할 것이 명백하다” 같은 단정적 표현도 많이 썼다. 한 총리가 “헌법상 삼권분립에 위배될 소지가 크다”, “공정성 등 기본 원칙을 훼손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발언한 것보다 강경했다. 정부 부처 출신 정치권 관계자는 “일반적으로 국무총리가 부처보다 정치적 발언이 강한데 이번 건에선 법무부가 총대를 멘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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