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에 쏠린 韓 기업부채…"'질서있는 구조조정' 지속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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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한국의 부동산업 대출 잔액 비율이 명목 국내총생산(GDP) 대비 24.1%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유로지역(14.7%)·미국(11.3%)·영국(8.7%) 등 해외 주요국(2022년 말 기준)보다 높은 수준이다. 생산성이 높지 않은 부동산 부문에만 신용공급이 쏠리면서 자원배분 효율성이 저해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영희 디자이너

김영희 디자이너

20일 한국은행 금융시장국 시장총괄팀 류창훈‧최신 과장, 권규빈 조사역은 ‘우리나라 기업부채 현황 및 시사점’ 보고서를 발표했다. 연구진 분석에 따르면 금융권 부동산업 관련 대출 잔액은 2018~2023년 사이 301조원 늘어났다. 같은 기간 전체 기업부채 증가 규모의 29%를 차지한다. 명목GDP 대비 부동산 대출 잔액 비율도 2017년 13.1%에서 지난해 말 24.1%로 높아졌다.

2010년대 중반 이후 부동산 경기가 뜨거워지면서 투자‧개발 수요가 늘고, 금융권도 적극적으로 대출에 나선 영향으로 풀이된다. 특히 비은행권은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토지담보대출 등 부동산개발업 기업대출을 크게 늘려 왔다. 이에 따라 2010년대 중반 이후 한국의 부동산업 대출 연평균 증가율은 15% 내외로, 주요국(유로지역‧미국‧영국‧호주)이 5~10%를 나타내는 것에 비해 두드러졌다. 다만 2022년 하반기 이후 부동산 시장 부진으로 증가세는 다소 둔화된 상태다.

연구진은 “자본 생산성이 낮은 부동산 부문에 신용이 집중될 경우 전반적인 자본의 부가가치 창출 효과와 신용 배분의 효율성이 저하될 소지가 크다”며 “부실 우려가 높은 PF대출에 대한 ‘질서 있는 구조조정’을 통해 점진적인 디레버리징(부채 축소)을 유도하는 정책 기조를 일관되게 추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향후 금리 인하 시기가 도래하더라도, 대출이 부동산 부문으로 재차 집중되지 않도록 정책적 대응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김영희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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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업 대출이 전체 기업부채 증가세에 상당 부분 기여하면서, 한국의 기업부채는 명목 GDP 대비 122.3%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지난해 말 기준). 국제결제은행(BIS)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9월 말 기준 한국의 기업부채 레버리지는 주요 39개국 중 8위로, 중국‧스웨덴‧프랑스‧스위스‧노르웨이‧벨기에‧덴마크 다음으로 높다. 2017년 말 16위보다 더 높아진 것이다.

코로나19 거치며 개인사업자 대출↑…대기업 대출도 증가세

부동산업 대출 외에 개인사업자 대출, 대기업 대출 등도 늘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 이후 소상공인‧자영업자 금융지원이 이어지면서, 2020~2022년 금융권의 개인사업자 대출(부동산업 제외) 연평균 증가율은 15% 수준을 나타냈다. 10% 수준이던 2017~2019년보다 높아진 것이다. 다만 한은은 “지원조치가 정상화되고 관련 대출 규모가 점차 줄어들면서 점진적으로 부채 조정이 이뤄질 것”으로 내다봤다.

은행 대기업 대출도 최근 들어 증가세다. 지난 2월 기준 시설자금 대출은 전년 동월 대비 15.9% 늘었고, 운전자금 대출도 14.5% 증가했다. 반도체‧석유화학‧2차전지 등 업종에서 국내외 대규모 생산시설을 확충하는 움직임이 두드러지면서다. 류창훈 과장은 “대기업 대출은 미래를 위한 투자 확대 측면에서 이해할 수 있다”며 “올해 영업이익이 개선돼 영업활동 현금흐름이 개선되면 외부 자금 조달 수요가 줄어들어 부채 증가세가 점차 둔화할 것”으로 내다봤다.

연구진은 기업부채 총량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부문별 특성에 맞게 리스크를 줄여나가야 한다고 제언했다. 보고서는 “부동산 부문과 개인사업자를 제외한 일반 기업의 경우 부채 증가에도 불구하고 자본확충이 동반되면서 대체로 안정적인 흐름을 보인다”면서도 “고금리 등으로 이자상환 부담이 증가해 한계기업(이자보상비율이 3년 연속 100% 미만인 기업)의 부채 비중이 확대되는 점 등은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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