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인 시키기만 하더니…생고생 직접 나선 PD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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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PD들이 다양한 직업을 체험하는 프로그램 ‘PD로그’. [사진 EBS]

PD들이 다양한 직업을 체험하는 프로그램 ‘PD로그’. [사진 EBS]

한겨울보다 차갑다는 3월의 바다에 뛰어드는 해녀, 로프 두 줄에 의지해 7층 건물 외벽을 청소하는 로프공….

이른바 ‘극한 직업’을 조명하는 프로그램은 그간 많이 있었다. PD와 작가 등 제작진은 그 고된 과정을 카메라에 담아내는 관찰자였다. 카메라 뒤에서 출연자의 생고생을 지켜보던 PD들이 이번엔 직접 카메라 앞에 섰다. 그리고 굵은 땀방울을 흘리는 극한 체험의 주인공이 됐다.

지난 6일 첫 방송한 ‘PD로그’는 EBS PD들이 직접 다양한 직업을 체험하고, 노동의 가치를 영상으로 담아내는 프로그램이다. 3~13년 차 PD 7명이 제각각 경험한 직업 노동기를 15부작에 걸쳐 선보인다.

이동윤, 정석희, 황신록(28) PD.(사진 왼쪽부터 순서대로)

이동윤, 정석희, 황신록(28) PD.(사진 왼쪽부터 순서대로)

‘PD로그’가 방영되는 매주 월요일 저녁 9시55분은 원래 EBS 간판 프로그램 중 하나인 ‘다큐프라임’이 편성됐던 시간대다. EBS로서는 PD를 전면에 앞세운 실험적인 프로그램을 채널의 황금시간대에 편성한 셈이다.

‘PD로그’는 ‘PD가 브이로그(V-log·일상을 기록한 영상)를 만들어보면 어떨까’란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지난 9일 경기도 고양시 EBS 사옥에서 만난 ‘PD로그’의 이동윤(38)·정석희(38)·황신록(28) PD는 회사로부터 처음 프로그램의 기획 방향을 듣고선 난감했었다고 떠올렸다.

9년차 정 PD는 “연예인도 아닌데 왜 카메라 앞에 서야 하고, 시청자는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걱정됐다”고 말했다. 1화 해녀편을 촬영한 정 PD는 “조연출 없이 제가 직접 고프로를 들고 찍거나 작가가 핸디캠으로 촬영한 것이 전체 분량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고 했다.

로프공에 도전한 이 PD는 “고수익 일자리라고만 생각했는데, 고층 빌딩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내는 것부터가 쉽지 않았다. 5~10년 넘게 업으로 삼는 분들에 대한 존경심이 느껴졌다”고 말했다. 주간 보호센터에서 요양보호사로 일한 황 PD는 “촬영 분량은 3~4일이면 확보할 수 있었지만, 일에 대한 희로애락을 더 깊이 담아내고 싶어 일주일 간 일했다”고 했다.

“요즘 사람들은 일을 대하는 태도가 조금 쉬운 것 같아요. ‘이거 안되면 다른 거 하지’ 이렇게요.” ‘PD로그’ 해녀편에서 60년 가까이 물질을 해온 해녀는 이같이 말한다. 이 PD는 해녀의 말에 느끼는 바가 컸다고 했다. “10년 넘게 일을 했지만, 언제까지 PD를 할 수 있을지 하루하루가 흔들리는 시간”이라며 “PD 일이 힘들어도 그만두지 못하는 건 ‘명의’ ‘세계테마기행’처럼 대중의 마음이 동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게 매력적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PD로그’가 첫 프로그램인 3년차 막내 황 PD는 “입사 후에도 업에 대한 고민은 계속 있었다”고 했다. “사람들이 유튜브 등 새로운 콘텐트를 많이 보지만, 방송국 PD로서 할 수 있는 콘텐트는 분명히 있다”는 것이 고민의 결론이다.

중견에 접어든 정 PD는 “앞으로 다가올 시대가 위기보다는 기회의 측면이 크다고 생각한다”면서 “유튜브 콘텐트와 달리, 덜 자극적이지만 의미 있고 대중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콘텐트를 만들어내면 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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