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닥불’·’섬집아기’ 부른 박인희, “가수라기엔 민망하다”고 말한 이유

중앙일보

입력

1세대 싱어송라이터이자 방송 진행자로 1970년대 인기를 끈 포크가수 박인희. 사진 비전컴퍼니

1세대 싱어송라이터이자 방송 진행자로 1970년대 인기를 끈 포크가수 박인희. 사진 비전컴퍼니

'모닥불', '목마와 숙녀', '방랑자' 등의 히트곡을 부른 가수 박인희(78·본명 박춘호)가 8년 만에 무대로 돌아온다. 다음달 14일 연세대학교 대강당에서 열리는 콘서트를 통해서다. 창작 포크송으로 1970년대 청년문화를 이끌었던 그는 2016년 '송창식과 함께한 박인희 컴백 콘서트' 이후 무대에 서지 않았다.
지난달 말 서울 여의도 한 카페에서 만난 박인희는 청자켓에 캡모자를 쓰고 나타났다. 여든을 앞둔 나이에도 주름이 거의 없는 '만년 소녀'의 모습이었다. '비바람이 몰아쳐도 나는 너에게 가리/ 어여쁜 모습으로 너도 내게로 오라'는 '재회'의 가사가 떠올랐다.

박인희, 70대에도 ’만년소녀’ 모습 그대로 #6월 14일 연세대 대강당서 8년만에 콘서트 #“할머니되어 ’섬집아기’ 부르려니 감회 남달라”

“특별한 (건강관리) 비결은 없어요. 가리는 음식도 없고 다이어트도 해 본 적 없고 헬스도 안 해요. 인터뷰하는데 민낯에 모자 쓴 사람은 저 밖에 없을 거예요. 그냥 걷는 걸 좋아해요. 걷다 보면 잡념이 사라지고 생각도 정리되는 기분이 들어 좋더라고요.”

그는 화려한 치장보다는 소박한 자연스러움이 좋다고 했다. '모닥불' 등 그가 부른 노래들도 담백하고 편안한 매력으로 오래도록 사랑받고 있다. ‘모닥불’은 한때 대학교 MT에서 빠질 수 없는 노래였고, ‘섬집아기’는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수록돼 있다.

박인희는 "1970년대 활동할 때도 화장 하나 하지 않고 방송에 나왔다"며 "이 사진도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사진 박인희 콘서트 포스터

박인희는 "1970년대 활동할 때도 화장 하나 하지 않고 방송에 나왔다"며 "이 사진도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사진 박인희 콘서트 포스터

자신의 노래가 오랫동안 사랑받는 비결을 묻자, “나도 신기하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는 숙명여대 불문과에 재학 중이던 1970년에 혼성 듀엣 뚜와에무아(프랑스어로 '너와 나')로 데뷔했을 때만 방송 활동을 조금 했을 뿐, 그 이후엔 노래 홍보를 위한 방송은 일절 하지 않았다.

그는 “솔로로 활동할 때 음반사와의 계약 조건이 ‘홍보 없이 앨범만 낸다’였다. 그래서 좋은 노래가 있으면 취입하는 방식으로 음반을 냈다. 노래를 내고도 라디오 DJ 활동만 몰두했지, 그 외 홍보를 뛴 적이 전혀 없으니 나는 가수라고 불려지는 것이 민망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박인희는 "내 노래를 오래도록 사랑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건 기적같은 일"이라고 말했. 사진 비전컴퍼니

박인희는 "내 노래를 오래도록 사랑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건 기적같은 일"이라고 말했. 사진 비전컴퍼니

그는 앨범 마지막 트랙에 건전가요 명목으로 삽입했던 '섬집아기'가 히트곡이 된 건 정말 의외였다고 했다.
“내가 활동할 땐 앨범 마지막 트랙에 반드시 건전가요를 넣어야 했어요. 그게 싫어서 고민하다가, 동요로 넣은 게 '섬집아기'였죠. 억지로 끼워 맞추듯 넣었으니 어디 가서 한 번도 부르지 않았어요. 그러다 미국에 갔는데, 이 노래가 자장가로 대물림된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100% 팬들이 키워준 노래라고 할 수 있죠.”

정작 박인희가 아들에 들려준 자장가는 ‘방랑자’였단다. 만삭일 때 ‘방랑자’를 냈기에, 아이가 뱃속에 있을 때부터 이 노래를 자장가처럼 들려줬다고 했다.
“‘섬집아기’를 불렀을 땐, 애기 엄마가 아니라서 아기를 재우려는 엄마의 고달픈 심정이 담긴 자장가를 잘 이해하지 못했다”며 “이젠 할머니의 심경으로 ‘섬집아기’를 불러보려 한다. 감회가 남다르다”고 말했다.

풍문여중 시절 단짝인 이해인 수녀를 떠올리며 쓴 자작시를 노래로 만든 ‘얼굴’도 빼놓을 수 없는 박인희의 히트곡이다. 이해인 수녀가 부산으로 전학 가며 멀어졌던 때, 친구를 향한 그리움을 담았다. 그는 “종종 연락하며 지낸다. 중학교 땐 좋은 시를 공유하곤 했는데, 요즘은 건강 이야기를 주고 받는다”며 웃었다.

박인희(오른쪽)의 중학교 2학년 시절. 이해인 수녀는 왼쪽에서 두 번째에 앉아 있다. 박인희는 "3월 25일 나의 생일에 친구들이 축하 선물로 준 시집을 품에 안았다. 큰맘 먹고 사진관에서 찍은 기념사진으로 기억한다"고 설명했다. 사진 본인제공

박인희(오른쪽)의 중학교 2학년 시절. 이해인 수녀는 왼쪽에서 두 번째에 앉아 있다. 박인희는 "3월 25일 나의 생일에 친구들이 축하 선물로 준 시집을 품에 안았다. 큰맘 먹고 사진관에서 찍은 기념사진으로 기억한다"고 설명했다. 사진 본인제공

다음달 14일 열리는 콘서트는 지난 4월말 예매 시작하자마자 일찌감치 전석 매진됐다. 박인희는 “예쁘지도, 젊지도 않고 꾸밀 줄도 모르는 나를 응원해주는 팬들이 있어 책임감과 함께 (콘서트를 할) 용기를 냈다. 신록이 좋을 때 신촌에서 노래할 생각에 설렌다. 벌써부터 젊은 날 신촌을 누비던 대학 시절로 돌아간 기분이 든다”며 팬과의 재회를 기대했다.

향후 활동에 대해선 “만들어둔 자작곡이 있지만, 막상 발표는 못하고 있다. 콘서트에서 공개해볼까 싶기도 했지만, 사람들이 기대하는 노래를 해야지 생소한 노래를 해선 안 된다는 생각이다. 기회가 된다면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계절인 가을에 자작곡을 공개하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