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염·치질 탈을 쓴 염증성 장 질환, 잦은 복통·설사 땐 의심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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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0호 23면

[헬스PICK] 내일 ‘세계 염증성 장 질환의 날’

장 건강은 삶의 질을 결정짓는 요소다. 변비로 화장실을 가기 힘들거나 자주 배가 아프고 설사하는 이들 모두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낸다. 크론병·궤양성 대장염으로 대표되는 염증성 장 질환을 앓는 사람이라면 특히 그렇다. 복통·설사·혈변 증상이 좋아졌다가 나빠졌다가를 반복해 일상생활에 큰 어려움을 겪는다. 하지만 질환에 대한 대중의 인식은 여전히 낮은 편이다. 크론병·궤양성대장염협회유럽연맹(EFCCA)이 ‘세계 염증성장질환의 날’(5월 19일)을 제정해 정보 제공과 인식 개선에 나선 이유다.

증상 완화·악화 반복하는 만성 질환

염증성 장 질환은 위장관에 원인 불명의 만성적인 염증이 발생한 병이다. 크게 크론병과 궤양성 대장염으로 구분한다. 2022년 기준 병원 진료를 받은 환자 수는 크론병 3만1098명, 궤양성 대장염 5만5256명 수준이다. 식습관이 서구화하면서 환자 규모는 꾸준한 증가세다. 특히 젊은 환자가 많아 주의해야 한다. 강동경희대병원 소화기내과 차재명 교수는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1인 가구가 늘면서 육식과 즉석식품 섭취가 증가한 것이 발병률을 높인 것으로 분석됐으며 질병에 대한 관심이 늘어 조기 진단한 것도 이유 중 하나로 거론된다”고 설명했다.

장 질환

장 질환

크론병은 입부터 항문까지 소화관 전체에 걸쳐 깊은 궤양을 동반한 염증이 산발적으로 나타난 경우다. 주로 소장과 대장에서 발병하며 복통·설사가 대표적인 증상이다. 염증 침범 부위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배꼽 주변이나 우하복부 통증이 흔하고 설사는 점진적인 호전 없이 수개월 이상 지속하는 특징이 있다. 궤양성 대장염은 직장·대장 점막에 염증이 생긴 경우로 크론병과 달리 얕은 궤양이 연속해서 분포하는 경향을 보인다. 설사와 끈끈한 점액이 섞여 나오는 점액변, 혈변을 많이 호소한다.

염증성 장 질환 환자는 장 증상 외에도 체중이 줄고 식욕이 떨어지며 기운이 없고 피곤하거나 열이 날 수 있다. 환자에 따라선 관절·눈·피부·간 등 다른 신체 부위에도 염증이 나타난다. 고려대 안산병원 소화기내과 김동우 교수는 “과민성 대장증후군이나 장염, 치질로 오해하기 쉬워 진단에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경우가 많다”며 “방치하면 지속적인 영양 결핍과 삶의 질 저하가 발생하고 심할 경우 장폐색, 장천공과 같은 합병증으로 이어질 수 있어 복통·설사·혈변 증상이 수개월 이상 지속하면 즉시 병원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염증성 장 질환은 증상이 없어지는 관해기와 증상이 악화하는 활동기가 반복하는 만성 질병이므로 평소 치료와 관리로 건강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 증상이 심하지 않다면 약물치료를 먼저 진행한다. 염증에 효과가 있는 항염증제를 쓰고 급성 악화기엔 스테로이드제를 사용한다. 면역조절제는 스테로이드의 사용량을 줄일 수 있고 스테로이드 치료를 중단했을 때 유지 약물로 활용한다. 최근엔 생물학적 제제를 쓰면서 관해 유도·유지 효과가 향상됐으나 모든 환자에게 적용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이런 약물치료로도 호전되지 않거나 천공이나 출혈, 장폐색과 같은 합병증이 발생했을 땐 수술을 고려한다. 크론병이나 궤양성 대장염이 있는 사람은 일반인보다 대장암 발생 위험이 2.3~2.7배 높은 것으로 알려진다. 대장암이나 대장암 전암성 병변이 확인된 경우에도 수술한다. 예전엔 염증성 장 질환의 치료 목표가 증상 소실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그러나 요즘엔 강력한 항염증 작용을 하는 약제가 도입되면서 증상 소실을 넘어 내시경·조직 검사에서 궤양이나 염증 소견이 없는 점막 치유 상태를 유지하는 것을 최종 치료 목표로 삼는다.

염증성 장 질환 환자는 일반인보다 영양 부족 상태일 가능성이 크다. 복통과 구역질, 설사, 변비 등 식사와 관련 있는 증상을 호소하다 보니 음식 섭취가 줄어 체중이 감소한다. 또 영양분의 소화와 흡수를 담당하는 장에 염증이 발생해 영양 결핍으로 이어지기 쉽다. 이런 영양 상태 불량은 질병 경과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므로 올바른 식이요법을 실천해 질병 상태를 개선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단백질 많은 생선류·콩류 섭취 필요

대한장연구학회에 따르면 염증이 급성으로 악화하는 활동기엔 증상 조절을 위해 소화 과정에서 흡수되지 않고 남아서 발효되는 식이 탄수화물의 일종인 포드맵 성분이 낮은 저포드맵 식단을 추천한다. 쌀밥·감자·쌀국수 등 곡류, 완두콩·두부 등 콩류, 유당 제거 유제품, 바나나·블루베리·포도 등 과일류, 가지·호박·시금치 등 채소류가 대표적이다. 질병 활동기엔 식이 섭취 부족, 단백질 회전율 증가, 장 영양소 손실이 발생해 충분한 양의 칼로리와 단백질을 섭취하는 게 좋다. 지방 함량이 적은 대신 단백질이 풍부한 생선류와 두부·콩류, 닭가슴살, 달걀을 챙겨 먹는다. 비타민과 무기질 같은 영양소 결핍을 막고자 비타민D와 칼슘이 풍부한 음식을 섭취하는 것이 도움된다. 간식이나 영양 보충 음료를 먹어 부족한 칼로리를 보충하는 것도 방법이다.

소화기 증상이 없는 관해기일 땐 엄격한 식이 조절은 필요 없지만 팜 오일이나 코코넛 오일, 트랜스지방처럼 증상 악화를 유발하는 식품은 피하는 것이 좋다. 대신에 단백질이 풍부한 음식을 부드럽게 조리해 먹고 가공식품 섭취는 가능한 한 줄인다.

염증성 장 질환은 한 번의 치료로 완치되는 질환이 아니다. 몸 상태에 귀 기울이고 평생 관리하면서 질환과 함께 살아간다는 마음가짐을 갖는 게 중요하다. 전문가들은 평소 음식·증상 일지를 작성할 것을 권한다. 하루에 평균 몇 번 대변을 보는지, 대변의 굳기와 색은 어떤지, 복부 어느 부위가 얼마나 아픈지, 체중 변화는 없는지, 식욕은 어떤지를 자세히 관찰해 기록하는 습관을 들이고 이를 토대로 주치의와 상담한다.

규칙적인 운동은 필수다. 활동기엔 심한 운동을 피하는 것이 좋지만 관해기 상태가 되면 건강한 사람과 마찬가지로 운동할 수 있다. 스트레스는 증상 악화의 원인이 되므로 자신에게 맞는 해소법을 찾아 마음을 다스린다. 예방접종이나 치아·구강·시력 관리, 심장·유방·위·대장·전립샘 검사로 건강 상태를 정기적으로 점검한다. 김 교수는 “염증성 장 질환은 증상을 완화하고 염증 수치의 정상화를 목표로 꾸준히 관리해야 한다”며 “최근에는 새로운 약제가 많이 개발되고 있어 약을 처방대로 투여하고 식이요법, 운동을 잘 실천하면 수술 한 번 받지 않고도 평생 무리 없이 일상생활을 하는 사례가 많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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