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수동 팝업? 난 공장 간다…수십만명 다녀간 '팩토리 투어' [비크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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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트렌드

 아무 의미 없어 보이는 일들도 반복되면 의미가 생깁니다. 일시적 유행에서 지속하는 트렌드가 되는 과정이죠. 트렌드는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욕망과 가치를 반영합니다. 예측할 수 없는 미래의 모호함을 밝히는 한줄기 단서가 되기도 하고요. 비크닉이 흘러가는 유행 속에서 의미 있는 트렌드를 건져 올립니다. 비즈니스적 관점에서는 물론, 나아가 삶의 운용에 있어서 유의미한 ‘통찰(인사이트)’을 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말 그대로 깜짝 나타나서 금세 사라지는 팝업 스토어. 하지만 이제 팝업의 존재 자체는 사라지지 않는 하나의 현상이 됐습니다. 서울의 핫플레이스인 성수나 홍대 앞은 물론 백화점에서도 한 브랜드의 팝업 스토어가 끝나면 연이어 다른 브랜드의 팝업이 열리는 식이에요. 게다가 좋은 입지에는 이미 몇달 치 팝업 스토어 예약이 차 있는 상황입니다.

이렇게 팝업 스토어가 인기몰이를 하는 데는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비결은 ‘특별한 경험’이에요. 브랜드의 철학을 충실히 구현한 오프라인 공간에서 한정판 제품을 구경하고 다양한 체험을 하면서 브랜드를 오감으로 경험할 수 있으니까요.

최근엔 이런 팝업 스토어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브랜드의 ‘공간 실험’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유동인구가 많은 핫플에 한시적으로 만든 공간보다, 기업이나 브랜드에게 정말 핵심적인 장소를 활용하는, 바로 ‘팩토리 투어’입니다. 공장 현장의 빗장을 열어젖히고 제품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죠. 대부분의 공장이 쉽게 방문하기 어려운 도심 외곽에 있지만 요즘엔 더 농밀한 브랜드 경험을 원하는 사람이 늘면서 점점 더 인기를 끌고 있어요. 오늘 비크닉에선 팝업 스토어보다 입소문을 타고 있는 참신한 팩토리 투어들을 소개할게요.

투어 프로그램으로 주말에도 문 여는 공장  

 경기도 오산시에 위치한 아모레퍼시픽의 '뷰티파크'의 '아모레 팩토리'. 아모레퍼시픽의 제품 생산 철학과 생산 공정을 체험할 수 있다. 아모레퍼시픽

경기도 오산시에 위치한 아모레퍼시픽의 '뷰티파크'의 '아모레 팩토리'. 아모레퍼시픽의 제품 생산 철학과 생산 공정을 체험할 수 있다. 아모레퍼시픽

경기도 오산의 아모레퍼시픽 ‘뷰티 파크’는 지난 4월부터 주말에도 문을 엽니다. 제품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서가 아니에요. 이곳을 구경하러 오는 관람객들을 위해서입니다. 평일에만 운영하던 공장 투어가 인기를 끌면서, 토요일까지 확대한 거예요.

이곳은 아모레퍼시픽을 대표하는 브랜드 설화수·라네즈 등을 생산하는 국내 최대 규모의 화장품 공장입니다. 수원 스킨케어 사업장과 김천 메이크업 사업장을 비롯해 각 지역에 흩어져 있던 물류센터까지 통합한 곳이죠. 넓이만 축구장 30여개에 달합니다.

이 거대한 공장엔 독특한 볼거리가 많습니다. 회사는 이를 묶어 여행 프로그램 ‘아모레퍼시픽 팩토리 투어’로 만들고 2022년 5월부터 운영하고 있어요.

 아모레 팩토리 1층 팩토리 스테이션에서는 아모레퍼시픽의 다양한 제품을 직접 테스트해볼 수 있다. 박이담 기자

아모레 팩토리 1층 팩토리 스테이션에서는 아모레퍼시픽의 다양한 제품을 직접 테스트해볼 수 있다. 박이담 기자

팩토리 투어의 시작은 ‘아모레 팩토리’에요. 아모레퍼시픽의 제품 생산 철학과 스토리를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이죠. 1층 ‘팩토리 스테이션’에선 이곳 공장에서 따끈따끈하게(!) 생산된 화장품을 직접 발라보고 테스트할 수 있죠. 이 제품들이 만들어지는 과정도 거대한 미디어월로 감상할 수 있습니다.

 아모레 팩토리 2층 팩토리 아카이브에는 아모레퍼시픽의 과거 설비를 전시해놨다. 박이담 기자

아모레 팩토리 2층 팩토리 아카이브에는 아모레퍼시픽의 과거 설비를 전시해놨다. 박이담 기자

2층은 ‘팩토리 아카이브’에요. 거대한 기계들이 가득한 공간입니다. 1945년 ‘태평양화학공업사’로 시작한 아모레퍼시픽의 설립 초기에 사용했던 장비들이죠. 한쪽에는 과거 연구소에 진열했던 화장품 시제품들과 연구서류들도 그대로 복원해놨어요.

3층은 ‘팩토리 워크’입니다. 말 그대로 공장의 생산라인을 걸으며 구경하는 코스입니다. 아모레퍼시픽이 화장품을 만들고, 포장하고, 배송하는 과정을 관람할 수 있습니다. 2층에서 과거 설비를 보고 난 뒤, 현재 쓰이는 최첨단 자동화 설비를 비교해보는 재미가 있죠.

공장에서 즐기는 식물원·박물관

아모레퍼시픽 뷰티파크의 볼거리는 공장만이 아닙니다. 아모레 팩토리를 나오면 바로 앞에 ‘원료식물원’이 있어요. 화장품 원료 식물로 아름답게 꾸며진 공간입니다. 설화수를 만드는 데 쓰이는 인삼·감초·작약부터 마몽드 원료인 목련·수선화·백합이 자라나고 있습니다. 16개 주제 공간에 총 1620여 종의 식물이 전시됐습니다.

공장에 식물원을 만든 건 아모레퍼시픽이 성장해온 발자취가 식물과 관련 있기 때문이에요. 각 식물이 가진 원료와 효능을 꾸준히 연구해온 덕에 더 좋은 화장품을 만들 수 있었죠. 그래서 식물이 가진 무한한 가치를 널리 전하기 위해 원료식물원을 만들었습니다.

 경기 오산시 아모레퍼시픽 뷰티파크의 원료식물원. 아모레퍼시픽

경기 오산시 아모레퍼시픽 뷰티파크의 원료식물원. 아모레퍼시픽

특히, 원료식물원은 식물원 그 자체로도 감상할 가치가 있어요.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조경으로도 유명합니다. 이곳을 꾸민 분은 선유도공원, 호암미술관 희원의 조경을 기획한 것으로 유명한 정영선 조경가에요.

원료식물원을 다 보고 나면, ‘아모레퍼시픽 아카이브’가 나옵니다. 아모레퍼시픽의 역사를 담은 박물관 같은 곳이죠. 아모레퍼시픽은 1980년부터 기업의 사료를 모아왔어요. 그 사료를 전시하기 위해 지난 2015년, 창립 70주년을 기념해 이곳을 만들었죠. 과거 화장품 포스터는 물론, 방문판매 사원의 유니폼·가방 등 8만여 개의 자료가 있습니다. 아모레퍼시픽의 성장사는 물론 과거 생활사까지 관찰할 수 있는 곳이죠.

 경기 오산시 아모레퍼시픽 뷰티파크의 아카이브에 전시된 과거 아모레퍼시픽 포스터들. 박이담 기자

경기 오산시 아모레퍼시픽 뷰티파크의 아카이브에 전시된 과거 아모레퍼시픽 포스터들. 박이담 기자

이처럼 한 공장에서 다양한 체험이 가능하다는 입소문이 퍼지면서 방문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다고 해요. 온라인 홈페이지를 통해 한 달 전에 사전예약이 가능한데, 예약이 열리자마자 마감되기 일쑤입니다.

수만명 다녀간 관광 명소된 공장들

여행지로 입소문 난 공장은 더 있습니다. hy(옛 한국야쿠르트)는 2019년 경기도 평택시에 새로운 공장을 건립해요. 이때 공장 투어 프로그램 ‘hy팩토리+(플러스)’를 만들죠. hy의 대표 제품인 야쿠르트가 만들어지는 제조 전 과정을 견학할 수 있습니다. 공장 견학을 돕는 도슨트(안내인)는 물론 유산균이 돼 유해균을 무찌르는 가상현실(VR) 콘텐트 등 체험 프로그램까지 마련했어요.

 hy의 공장 투어 프로그램 'hy팩토리+'에 참여한 어린이들. hy

hy의 공장 투어 프로그램 'hy팩토리+'에 참여한 어린이들. hy

반응은 뜨거웠어요. 2020년 방문객 수가 1800명 수준이었지만, 지난해엔 13만명이 다녀갑니다. 올해도 4월까지 6만명이 이곳을 찾았어요. 어린이를 위한 참신한 체험 콘텐트들이 SNS에서 입소문을 타면서 가족 단위 방문객들을 불러모으는 데 성공한 겁니다.

식품 기업 ‘하림’도 공장 투어 프로그램을 운영 중인데 진짜 여행처럼 코스를 짰어요. 전북 익산시에 있는 식품 공장 ‘퍼스트 키친’과  ‘하림 닭고기 종합처리센터’를 기반으로 각기 다른  ‘하림키친로드’를 만든 겁니다. 퍼스트 치킨에서는 하림이 만드는 즉석밥, 가정간편식 등의 공정을 견학에 이어 하림의 식품 철학을 소개하는 극장, 갤러리까지 체험할 수 있고, 닭고기 종합처리센터에서는 신선한 닭고기를 생산하는 신선 공장과 치킨 너겟을 만드는 육가공공장을 둘러볼 수 있죠.

지난해 여기에 참가한 사람은 2만5000명에 달했고, 올해는 4만8000명이 참가할 것으로 예상합니다. 하림 관계자는 “신선한 식품을 만드는 과정을 투명하게 보여주는 투어로 자연스레 하림의 철학을 경험하고, 하림에 대한 신뢰와 팬덤까지 형성하고자 한다”고 설명했어요.

 하림의 팩토리 투어인 '치킨로드'에서 진행하는 발골쇼. 하림

하림의 팩토리 투어인 '치킨로드'에서 진행하는 발골쇼. 하림

지자체와 함께 만드는 팩토리 투어

팩토리 투어에 사람이 몰리면서, 지자체와 기업들이 함께 손잡고 만드는 팩토리 투어가 생겨나기도 해요. 충북 음성군은 지역 내 공장들을 여행하는 ‘흥미진진 팩토리 투어’를 운영하고 있어요. 11개 산업단지에 2000개가 넘는 기업 공장이 있는 지역 특성을 살린 거예요. 2019년부터 시작했는데, 지난해에는 신청 접수 3일 만에 모두 마감됐어요. 올해는 풀무원·건국유업·코리아크래프트브류어리 등과 함께 투어 프로그램을 짰습니다. 공장 견학은 물론 주요 제품 체험까지 할 수 있고, 코스도 당일 혹은 1박 2일 등으로 세분화했어요.

 충북 음성군이 군내 기업 공장들과 함께 진행하는 팩토리 투어 신청 홈페이지. 음성군

충북 음성군이 군내 기업 공장들과 함께 진행하는 팩토리 투어 신청 홈페이지. 음성군

이렇게 브랜드를 대상으로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하는 트렌드는 계속될 거예요. 나만의 가치와 취향이 중시되면서, 타인의 추천보다 스스로 브랜드를 직접 경험해 보겠다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으니까요. 이런 맥락에서 팩토리 투어는 팝업스토어보다 훨씬 강력한 힘을 가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음식점에 비유한다면, 아예 주방을 오픈하고 음식 조리 과정을 공개한 셈이니까요. 이영애 인천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팝업스토어 같은 만들어진 공간은 전시효과는 좋겠지만, 제조 과정 등 브랜드의 본질을 진정성 있게 알아가는 건 팩토리 투어가 더 강력할 것”이라고 설명했어요.

앞으로도 많은 기업이나 브랜드가 공장의 빗장을 열고 투어 프로그램을 만들 거라 예측됩니다. 소비자의 신뢰는 물론 팬덤을 만드는 강력한 무기니까요. 앞으로 어떤 브랜드가 좋아진다면, 팩토리 투어가 있는지도 검색해보세요. 브랜드에 더욱 빠지는 기회가 될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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