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의료계 하반기 결산|ADIS 미국인 국내 방치 "아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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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금년 전반기의 의학계가 암에 대한 요법이나 노망의 원인 규명과 치료 등 주로 약리학적 측면에서 뚜렷한 성과를 올린 반면 후반기에는 선천성 질환을 가진 태아에 대한 첨단 치료술을 개발했다는데서 가장 큰 업적을 보인 한해였다.
후반기에 있었던 의학계의 업적과 사건을 정리해 본다.
◇제대 혈관을 통한 직접 시술·수혈=서울대 의대 김승욱 교수(산부인과)팀은 지난 11월 20일 RH마이너스 피를 가진 산모의 태아가 모체에 생긴 RH 플러스 항체의 영향으로 죽어 가는 것을 국내에선 처음으로 탯줄을 통한 직접 수혈로 살려내 임신 35주만에 건강한 아기를 분만시키는데 성공했다.
RH마이너스의 피를 가진 여성의 수는 국내에 약1% 정도로 이런 여성이 초산은 정상 분만이 가능하나 두 번째 임신부터는 모체에 RH플러스 항체가 생겨 태아의 혈액 생성을 방해하므로 지금까지는 대부분 사산돼 왔다.
탯줄을 통한 직접 수혈은 선진국에서도 성공한 예가 그리 많지 않은 고도의 시술로 알려져 국내 의료 기술 수준을 한 차원 높이는데 결정적 기여를 했다.
이어 사흘 뒤 연세대 의대 송찬호 교수(산부인 과) 팀은 저단백혈증에 의한 비 면역 태아 수종으로 진단된 태아에게 두 차례에 걸쳐 탯줄을 통한 알부민의 직접 주사로 건강한 아기를 분만케 하는데 성공했다.
태아의 탯줄을 통한 직접 수혈이나 주사의 성공은 이제까지 태아에게 생기는 용혈성 빈혈·뇌성마비·태아 감염 등의 선천성 질환에 대해 전혀 손쓸 수 없었던 것을 치료해 선천성 기형아의 출산을 막는 길을 열었다는데 큰 의미가 있다.
◇레이저 복강경 담낭 절제술=중앙대 의대 부속 용산 병원의 김상준 교수(외과)팀은 수년간 담낭염으로 고생하던 환자(여·38)를 국내에선 처음으로 개복 하지 않고 레이저 복강경에 의한 담낭의 환부를 절제해 내는 수술에 성공했다.
이 수술은 종래의 개복 수술이 10∼20cm의 수술 흔적이 남는데다가 입원 기간이 2주일을 요하는데 비해 환자의 상복부 명치끝에 지름 1cm와 0.5cm정도의 절개 구를 통해 시술되므로 수술 흔적이 거의 없다는 것.
또 입원 기간도 불과 3∼5일 뿐이므로 환자에게 주는 시간적·경제적 부담이 크게 줄어들어 획기적 수술 요법으로 등장했다.
이어 카톨릭 의대 부속 성모 병원과 서울 중앙 병원에서도 이를 이용한 맹장 절제 수술과 담낭 절제 수술이 잇따라 성공함으로써 당일로 퇴원할 수 있는 외래 수술 시대의 개막을 알렸다.
◇기타▲태아 외과 수술 실패=선천성 기형아로 진단된 태아를 산모의 뱃속에서 일부 꺼내 수술로 치료하고 다시 뱃속으로 집어넣는 첨단 수술이 연세대 의대 영동 세브란스 병원에서 첫 시도됐으나 아깝게 실패해 의학계의 아쉬움을 샀다.
이 병원 산부인과 이국 교수와 소아 외과 최승훈 교수 팀은 태아가 선천성 횡경막 탈장으로 복부의 장기가 가슴 부위로 올라와 왼쪽 허파가 발달되지 않은 아기에 대해 산모의 자궁을 절개, 아기의 몸 일부를 꺼내 외과 수술을 시도했다.
그러나 탈장된 부위를 제 위치에 바로 잡아 수술이 거의 성공 단계에서 갑자기 일어난 산모의 자궁 수축으로 태아에게 심장마비가 일어나 아깝게 실패했다.
이 수술은 미국에서도 지금까지 8차례 시도해 2건 정도가 성공한 최첨단 의료 기술로 이번 시술에서 산모에게 자궁 수축이 왜 일어났는지가 커다란 숙제로 남았다.
▲안경사 굴절 검사 허가 논란=대한 안과 학회는 정부가 공포한 의료 기사법 시행령 제8조 「안경사가 자동 굴절 검사기를 사용해 시력 측정을 할 수 있다」는 조항이 의료법에 위배된다며 헌법재판소에 제소, 거센 논란을 일으켰으나 뚜렷한 결말을 보지 못한 채 해를 넘기게 됐다.
▲외국인 에이즈 보균자의 국내 활동= 에이즈(후천성 면역 결핍증)보균자가 국내에도 급증하는 가운데 지난 8월 보균자로 알려진 미국인이 국내에 체류하는 동안 30여 명의 여성과 성 접촉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부문 전문 의료 관계자는 사전에 이 보균자에 대해 활동 규제와 추적 검사를 정부에 요청했으나 정부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아 대책에 큰 허점을 보였다.
▲C형 간염 무방비=수혈로 인한 C형 간염 항체 양성 반응이 국내에서 60∼66%의 높은 비율로 나타나고 있으나 헌혈·수혈 때 C형 간염 항체 반응 검사가 의무화돼 있지 않아 91년도의 큰 숙제로 넘어가게 됐다. <이기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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