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가 2000가구 이상 대단지 아파트를 지을 때 노인요양시설도 의무적으로 짓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서울시 한 관계자는 16일 “최근 국토교통부에 노인요양시설 확충을 위한 법령 개정을 요청했다”며 “주민공동시설에 노인요양시설을 포함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라고 밝혔다.
주택법 시행령(주택건설기준) 등에 따르면 100가구 이상 주택을 지을 때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하는 주민공동시설은 최다 16개다. 단지 규모에 따라 경로당ㆍ놀이터ㆍ어린이집ㆍ주민운동시설ㆍ다함께돌봄센터 등을 지어야 한다. 여기에다 2000가구 이상의 아파트를 지을 때 노인요양시설을 포함하자는 게 서울시 생각이다.
서울 노인요양시설 대기자만 1만9062명
서울시가 법령 개정 추진까지 나선 데는 초고령화 사회를 앞두고 요양시설 수요를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노인요양시설은 요양등급 1~2등급을 받아야 입소할 수 있다. 거동이 불편해 일상생활을 스스로 할 수 없는 노인이 여기에 해당한다.
서울시에 따르면 서울 전체 요양시설은 241곳으로 시ㆍ구립 시설이 34개, 사립이 207곳이다. 이 시설 정원은 총 1만3906명인데 현재 입소율은 91.6%로 거의 꽉 찼다. 대기자만 1만9062명에 달한다. 시는 2025년 65세 이상 인구 비중이 20%를 넘는 초고령화 사회 진입이 예상되는 가운데 노인요양시설 관련 수요가 가파르게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진단한다.
하지만 주민 반대가 걸림돌이다. 2022년 동대문구 답십리동 시유지(대지면적 2990㎡)에 들어선 시립동대문실버케어센터(정원 116명)는 2007년 시립서부노인전문요양센터 개관 이후 15년 만에 지었다. 이 과정에서 주민들이 반발했다.
여의도시범 아파트도 “데이케어센터 반대”
결국 주민 요구대로 센터 인근에 산책로와 휴게공간을 조성하고 센터 안에도 북카페 등을 만들기로 하면서 사업을 추진할 수 있었다. 현재 신속통합기획사업(재건축) 1호 단지인 여의도 시범아파트도 서울시가 공공기여 목적으로 데이케어센터 설치를 요구하면서 주민과 대립하고 있다. 데이케어센터는 요양등급 3~5등급 주민이 낮에 다니는 ‘노인 유치원’으로 불린다.
서울시 건의에 국토부는 난색을 보인다. 주민공동시설이 아파트 단지 거주자를 위한 시설임을 고려할 때 노인요양시설을 의무적으로 설치하는 것은 과도하다고 한다. 국토부 한 관계자는 “노인요양시설이 입주민 공동시설에 해당하는지 잘 모르겠다”라며 “재산가치 하락 우려와 향후 관리 문제 등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 송파구의 한 재건축 예정 단지 주민 김모(49) 씨는 “서울시가 추진해야 할 정책을 아파트 주민에게 떠넘기는 것 같다"라며 "아파트 단지에 요양시설이 들어서는 것을 반길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생활편의시설로 봐야
하지만 서울시는 2021년 시행령을 개정해 500가구 이상 주택단지에 의무적으로 설치하도록 한 다함께돌봄센터(방과 후 돌봄시설) 사례가 노인요양시설과 비슷하다고 주장한다. 다함께돌봄센터는 입소대상자가 단지 내 거주자뿐 아니라 자치구 구민 전체를 대상으로 한다.
초고령화 시대가 임박한 만큼 노인요양시설을 생활편의시설로 봐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송인주 서울시복지재단 선임연구위원은 “유치원ㆍ어린이집을 지역사회의 중요한 인프라로 보듯이 노인요양시설이나 데이케어센터도 가족 중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생활편의시설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며 “앞으로는 집 근처에 요양시설이나 데이케어 센터가 있다는 것이 삶의 질을 높이는 중요한 요소로 꼽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