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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22대 국회에 ‘선거제도개혁위’ 신설하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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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조화순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한국정치학회장

조화순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한국정치학회장

향후 20여년간 대한민국 정치의 향방을 결정할 중요한 총선이 끝났다. 승자는 승자대로, 패자는 패자대로 표출된 민의를 좇아 사후 대책 마련에 분주할 것이다. 하지만, 이번 선거를 통해 분명하게 드러난 정치 제도와 선거 제도의 문제점에 대해 당리당략을 떠나 냉철하게 고민해야 할 과제가 국민의 손에 남겨졌다.

먼저 과거 몇 차례 선거에서도 나타났지만, 소선거구 제도가 대의제 민주주의의 근간을 위협할 정도로 민의의 왜곡이 심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선거통계시스템에 따르면 이번 총선의 지역구 투표에서 민주당의 득표수는 1476만여표(50.5%), 국민의힘은 1318만여표(45.1%)로 불과 5.4% 포인트 차이였다. 그런데 민주당이 적게는 수 백표에서 수 천표 차이로 선거구 의석을 가져가면서 지역구 의석수는 161석 대 90석으로 큰 차이가 났다. 이러한 득표율과 의석수 차이는 승자독식의 소선구제에 기인한다.

득표율과 의석수 차이, 민의 왜곡
소선거구제로 정치 양극화 심화
국민적 토론·합의로 해법 찾아야

[일러스트=김지윤]

[일러스트=김지윤]

둘째, 한국사회에서 소선거구제는 지역주의에 기반을 둔 양당제를 고착시키고, 정치 양극화 경향을 키워왔다. 이번 총선에서도 양당 구조를 바꿔보려던 제3지대 정당들은 설 자리가 없었다. 근소한 표심의 차이로도 승리하는 구조에서 선거는 극한 대결로 치닫고 진영 양극화와 갈등이 더 깊어질 수밖에 없다. 대결 일변도의 국회가 국민의 의사와 역량을 결집해 미래를 위한 국가 차원의 정책을 추진하길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셋째, 소선구제에서는 지역 이슈가 국가의 핵심 어젠다를 대신하는 경향이 있다. 이번 총선에서도 국제정세 변화와 주요 산업의 경쟁력 약화, 북한의 핵무장과 안보 위협, 저출생과 초고령 사회 진입 같은 국가 어젠다는 거의 주목받지 못했다. 선거판은 내내 상대편을 심판해달라는 읍소에다 특정 동네 상권 부활, 지역 도서관 건립 등 심지어 소선거구 전체도 아닌 읍·면·동 단위의 선심성 정책과 구호로 채워졌다.

한두 동네에서만 몰표가 나와도 선거 결과가 뒤바뀌니 당선이 중요한 후보들은 너나없이 선심성 동네 공약에 목숨을 걸어야 했다. 문제는 이렇게 당선된 정치인들이 국회 상임위원회를 통해 640조원이나 되는 국가 예산의 향방과 주요 국가 정책의 방향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지방선거에나 나올 만한 정책이 총선의 향방을 좌우하고 국회가 제 기능을 하기보다 정쟁과 사적 이익의 장으로 전락하는 것은 큰 문제다. 국가적 위기 앞에서도 권력 투쟁에 몰두해 국가 존립이 위협받았던 역사 속에서 교훈을 찾아야 한다.

넷째, 특정 지역에서는 공천만 받으면 당선되는 구조여서 각 정당의 공천제도가 무력해지고 특정인의 의지에 따라 공천이 이뤄졌다. 명확한 이념과 정책이 아니라 유력 정치인의 정치 스타일이나 개인의 인기에 의존해 정당이 운영되는 정당의 사인화(私人化)는 민주주의 자체를 위협한다.

이번 총선 과정을 통해 양대 정당과 국회는 현행 선거법을 제대로 준수할 의지도 없을 뿐 아니라 자기 밥그릇에 해당하는 선거제도를 개혁하는 일에는 무능력함을 재차 입증했다. 선거일 1년 전까지 지역구를 획정해야 한다는 공직선거법 조항은 무시됐고, D-41일에야 선거구가 정해졌다.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둘러싼 말 바꾸기로 또다시 위성정당이 출현해 비례대표제의 의미를 퇴색시켰다.

이해당사자인 정당과 국회의원이 민의를 충실히 대변할 수 있도록 선거법과 정당법을 개혁할 수 없다면, 선거제도 개혁을 위해 새로운 논의 무대나 외부 기구가 필요하다. 22대 국회가 개원하면 초반에 국회 외부에 가칭 선거제도개혁위원회를 신설해 선거 제도 개혁안에 대한 국민적 토론과 합의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현행 선거 제도에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콘크리트 지지층이 아닌 소수의 부동층을 흡수해 당선되는 것 자체가 목적이 되고있다. 당선 이후에는 국가 차원의 문제는 뒷전이 된다. 공천권을 쥔 당 대표에 대한 충성을 우선순위에 두는 생계형 정치인이 양산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들에게 10년 대계에 해당하는 산업 정책, 백년대계인 민주주의 핵심 제도 설계와 교육 문제를 더는 맡겨둘 수 없는 노릇 아닌가.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조화순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한국정치학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