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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핵심 광물 전쟁 시대, 한국엔 텅스텐이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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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김진수 한양대 자원환경공학과 교수

김진수 한양대 자원환경공학과 교수

핵심 광물 확보 전쟁의 시대에 진입했다. 핵심 광물이란 가격·수급 위기의 발생 가능성이 크고, 위기 때 국내 산업과 경제에 파급효과가 크기 때문에 경제안보 차원에서 관리가 필요한 광물을 일컫는 말이다. 탄소 중립형 에너지 체계 수립에 필요한 광물뿐 아니라 반도체, 정보통신(ICT), 우주산업, e모빌리티 등 대한민국의 미래가 될 첨단산업과 국방 분야의 첨단 무기체계에도 필수적인 자원이다.

미국·유럽연합(EU)·일본 등 주요국이 핵심 광물의 공급망 확보 전쟁에 뛰어든 이유는 무엇일까. 먼저 핵심 광물은 다른 광물보다 지역 편중이 심하다. 백금·리튬·희토류·코발트는 상위 3개 생산국의 점유율이 80%를 넘는다.

중국산에 밀려 상동광산 폐광
공급망 안정 중요해진 시대에
국내 생산 잘해야 국익에 보탬

김지윤 기자

김지윤 기자

게다가 핵심 광물은 석탄이나 철광석과 달리 제련을 통해 순도를 높인 제품을 교역하는데, 제련 공장이 중국 등 특정 국가에 편중해 있다. 또한 정치 진영 논리와 경제 블록화가 진행되면서 배타적인 경제공동체를 구성하거나 해외 공장의 국내 복귀, 즉 리쇼어링(Reshoring) 움직임이 강하게 나타난 데 따른 글로벌 공급망(GVC) 변화 때문이다.

이에 따라 발달한 제조 기반을 갖춘 주요 국가는 앞다퉈 자원안보 강화에 나서고 있다. 미국은 행정명령과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만들어 대처했다. EU는 핵심 원자재법(CRMA)으로, 일본은 에너지기본계획에 광물자원을 포함했다. 이들은 세계은행과 함께 탄력적이고 포괄적인 공급망 강화를 활발하게 추진하고 있다.

한국도 지난해 2월 ‘핵심 광물 확보 전략’을 발표했다. 지난 1월에는 ‘자원안보 특별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공급망 3법’으로 불리는 ‘소재·부품·장비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특별조치법’ 개정안, 경제 안보를 위한 공급망 안정화 지원 기본법안, 국가 자원안보에 관한 특별법안이 제정 또는 개정됐다.

핵심 광물 공급망을 강화하는 가장 강력한 방안은 해당 광물을 자국에서 직접 생산하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은 자원 빈국이라 에너지는 석유·천연가스·유연탄의 경우 전량을 수입에 의존한다. 광물자원의 자급률도 2022년 3.3%에 그쳤다. 필수적으로 사용하는 자원 중에 우리 땅에서 생산되는 자원은 거의 없다.

반도체·항공·방산·자동차·통신·의료 등 4차 산업혁명과 미래 산업의 원료로 매우 중요한 전략물자인 텅스텐도 마찬가지다. 한국뿐 아니라 미국·EU·일본과 국제에너지기구(IEA)가 하나같이 텅스텐을 핵심 광물로 분류한다. 그런데 한국은 산화텅스텐의 경우 95%나 중국에 의존하고 있다.

원래 텅스텐은 한국의 주요 수출품 중 하나였다. 1916년 강원도 영월 상동에서 텅스텐 광산이 개발됐다. 1945년 광복 이후 상동광산을 운영한 대한중석은 1950~60년대 수출의 50% 이상을 차지했던 국영기업이었다.

그러나 1980년대 막대한 정부 보조금을 받은 중국산 때문에 한국의 텅스텐 수출 경쟁력이 크게 나빠져 1994년 폐광했다. 이후 몇 차례 광업권자가 변경됐으나 좀처럼 활로를 찾지 못하던 중에 2015년 알몬티산업이 상동광산 광업권을 인수하면서 전환점을 맞았다.

중국 텅스텐이 여전히 국제 광물 시장에서 높은 가격 경쟁력을 갖고 있는데도 한국 텅스텐의 국내 생산 길이 열린 까닭은 무엇일까. 치열한 자원 확보 경쟁, 미래 수요 전망에 기반을 둔 과감한 자본 투자 필요성, 더 효율적이고 경제적인 채굴 기술 확보라는 세 박자가 어우러진 결과로 볼 수 있다.

광물 매장량 평가는 가격에 따라 변한다. 상동광산은 단일 광산 기준으로 세계 최대의 매장량을 보유한 것으로 평가되고, 광산 수명도 90년 이상으로 전망된다. 텅스텐을 다시 한국에서 생산하면 자원안보 강화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한국경제 규모가 세계 13위로 커짐에 따라 텅스텐 개발과 수출 자체로는 국가 핵심 산업이 되기 어렵다. 하지만 텅스텐은 화합물이나 합금 형태로 항공기와 우주선, 전기·전자·통신 장비, 반도체, 첨단 무기, 자동차, 석유화학 공정에 두루 활용된다. 각 산업의 생산 활동이 원활하도록 공급망 안정을 확보해야 한다는 측면에서 핵심 광물인 텅스텐 생산이 차질 없이 진행돼 공급망 안보에 기여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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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수 한양대 자원환경공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