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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금 없는 세상 오나…한은 “연내 10만명에 CBDC 테스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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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디지털 화폐 상용화 속도

‘디지털 화폐’ 시대가 성큼 다가오고 있다. 스테이블코인 등 암호화폐가 결제수단으로 주목받는 가운데, 각국 중앙은행이 디지털 화폐(CBDC, Central Bank Digital Currency) 상용화 추진에 박차를 가하면서다. 중앙은행이 CBDC 인프라를 먼저 구축해 민간 암호화폐보다 우위를 지키겠다는 의미도 담겼다. 한국은행도 ‘CBDC 실험’을 서두르고 있다. 15일 한은은 ‘2023년 지급결제보고서’를 내고, 올 4분기부터 국민이 직접 디지털 화폐를 체험하는 실거래 테스트를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CBDC는 중앙은행이 분산원장 등의 기술을 활용해 전자적으로 발행하는 디지털 화폐다. 지폐와 동전과 같이 가치가 액면가로 고정되는 ‘법화(法貨)’, 즉 법정화폐다. 비트코인과 같은 암호화폐가 민간에서 발행되고, 가치가 그때그때 달라지는 것과는 태생부터 차이가 있다.

김영옥 기자

김영옥 기자

CBDC가 상용화되면 소비자들의 디지털 상거래 절차가 더욱 간편해진다. 신용카드나 간편결제를 사용할 경우 구매자와 판매자 사이에 추가적인 정산 과정이 필요했다면, 향후에는 구매자가 자신의 전자지갑에서 CBDC를 판매자에게 이전하면 되는 것이다. 현행 ‘OO페이’ ‘OO머니’와 같은 간편결제·간편송금 서비스가 해당 업체의 서비스를 가입한 사람들끼리만 쓰인다면, CBDC는 보편적인 사용이 가능하다. CBDC에 프로그래밍 기능을 넣어 특정 조건이 만족되면 자동으로 결제가 이뤄지게 할 수 있다.

지난해 10월부터 CBDC 활용성 테스트에 나선 한은은 올 4분기에는 최대 10만 명의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실거래 테스트에 나설 예정이다. 공공 바우처(보육료 등 용도가 정해진 보조금)를 CBDC에 구현해, 참가자들이 실생활에서 직접 써보는 방식이다. 윤성관 한은 디지털화폐연구부장은 “시스템 개발 업무 프로세스를 거의 마련한 단계에 접어들었다”며 “바우처 관련 기관과도 협의를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CBDC 연구에 박차를 가하는 건 한은 뿐만이 아니다.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중앙은행의 90% 이상이 CBDC 연구에 착수한 상태다. ‘현금 없는 사회’를 일찍이 대비하자는 이유도 있지만, 민간이 발행하는 암호화폐에 디지털 시장을 뺏길 수 없다는 위기의식도 담겨 있다.

중앙은행이 주시하고 있는 암호화폐는 ‘스테이블코인’이다. 스테이블코인은 비트코인과 같은 여타 암호화폐와 달리 발행자가 통화·상품 등 준비자산을 보유하면서 가치를 안정화한다는 게 특징적이다. 가격 변동성이 비교적 낮고, 디지털 플랫폼을 통한 보관이나 거래가 용이해 향후 지급수단으로 이용될 가능성이 높다. 지난 2019년엔 페이스북(현 메타)이 자체 스테이블코인인 ‘리브라(libra)’ 발행을 추진한 바 있다. 최근에는 국제 결제 플랫폼 페이팔이 달러 가치와 연동되는 스테이블코인으로 PYUSD를 내놨다.

각국의 중앙은행이 고민하는 건 민간에서 발행한 스테이블코인이 디지털 지급수단의 자리를 굳힐 경우 생겨나는 부작용이다. 당장 통화정책의 유효성이 저해될 수 있다. 중앙은행은 경기와 물가 수준을 고려해 금리와 통화량을 조절하는 방식으로 통화정책을 운용한다. 중앙은행이 아닌 민간이 발행한 스테이블코인은 이런 통제 바깥에 있다. 이종렬 한은 부총재보는 “각국의 CBDC가 다른 나라로 이동하더라도 다른 나라의 통화주권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 방식으로 설계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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