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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거 앞둔 대전 유성호텔 ‘109년 역사’ 기록으로 남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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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면

109년 역사를 뒤로하고 지난달 31일 문을 닫은 대전 유성호텔에 대한 기록화사업이 추진된다.

대전 유성호텔 VIP실 313호실 모습, 이 방은 김종필, 김영삼, 김대중 등 거물급 정치인들이 머물렀던 곳으로 유명하다. [사진 대전시]

대전 유성호텔 VIP실 313호실 모습, 이 방은 김종필, 김영삼, 김대중 등 거물급 정치인들이 머물렀던 곳으로 유명하다. [사진 대전시]

대전시는 1960~70년대 대표 신혼여행지 등으로 국민의 사랑을 받은 유성호텔을 기록화하기 위해 영상과 사진 등으로 남길 계획이라고 15일 밝혔다. 숙박부와 객실 번호판 등 유성호텔의 경영과 운영 과정을 보여주는 각종 기록물, 마지막까지 유성호텔을 지킨 직원과 이용객에 대한 구술채록(말하는 것을 기록하거나 녹음) 등 ‘기록으로 남길 수 있는 모든 것’을 보존할 방침이다.

그동안 일반에 공개하지 않은 VIP실 313호애 대한 조사와 기록도 이뤄질 예정이다. 1970년대에 만들어진 이 방은 다른 객실과 달리 일반인은 숙박할 수 없었다. 이 방은 김종필, 김영삼, 김대중 등 거물 정치인이 머물렀던 객실로 유명하다. 내부에는 고급스러운 앤틱가구와 샹들리에 등이 남아 있으며 보존 상태가 좋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기록화 사업은 유성호텔에 국한하지 않고 유성호텔과 호텔 리베라(전신 만년장)로 상징되는 유성온천 전반에 관한 기록을 남기게 된다. 유성온천이 근대도시 대전 발전에 어떤 기여를 했는지도 함께 기록한다.

대전 유성호텔 앞에 있던 소나무. 최근 유성온천 입구로 옮겨 심었다. [사진 유성구]

대전 유성호텔 앞에 있던 소나무. 최근 유성온천 입구로 옮겨 심었다. [사진 유성구]

대전시 노기수 문화관광국장은 “유성온천은 보문산과 함께 오랫동안 대전시민의 사랑을 받아온 휴양 공간”이라며 “기록화사업 결과물은 대전 0시 축제 기간 옛 충남도청사 특별전시실에서 선보일 예정”이라고 말했다.

유성호텔은 1915년 자연 용출 온천이 개발되면서 개관해 올해 문을 닫을 때까지 109년간 대전을 대표하는 호텔로 인기를 누렸다.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98년 서울올림픽 때는 선수촌호텔, 1993년 대전엑스포 기간에는 본부 호텔로 사용하며 대전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이어갔다. 하지만 1966년 지금의 자리로 이전한 뒤 58년이 지나면서 건물도 노후하고 운영과 관리에도 어려움을 겪었다.

100년 넘는 호텔이 문을 닫는다는 소식에 대전·충남은 물론 전국에서 투숙객이 몰렸다. 호텔 숙박이 ‘성지순례’처럼 여겨졌고 인증샷과 글이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 올라오며 관심을 끌었다. 영업 종료를 앞두고는 온천욕을 즐기기 위해 찾는 손님으로 문전성시를 이루기도 했다.

호텔을 찾은 시민들은 “초등학교 때부터 아버지의 손을 잡고 왔다” “100년 넘은 호텔이지만 상태도 좋은데 아쉽다” “대전을 대표하는 호텔이 사라진다는 소식을 듣고 너무 아쉬웠다”고 말하며 섭섭함을 감추지 않았다.

대전 유성호텔 내부 모습. 1915년 개장해 109년 역사인 유성호텔은 지난달 말 문을 닫았다. 신진호 기자

대전 유성호텔 내부 모습. 1915년 개장해 109년 역사인 유성호텔은 지난달 말 문을 닫았다. 신진호 기자

유성호텔은 고객들의 마음에 보답하기 위해 지난해부터 투숙객에게 100년 전 유성호텔이 그려진 목욕 바가지와 단지 모양의 바나나 우유, 초코파이를 제공했다. 호텔 측은 건물을 허물고 그 자리에 호텔 1개 동(213개 객실)과 공동주택 2개 동(536세대)을 짓기 위해 2022년부터 재개발 계획에 들어갔다. 이르면 내년 7월 착공, 2028년 문을 열 예정이다.

대전 유성구는 지난 5일 유성호텔이 기증한 소나무를 유성온천 입구에 옮겨 심었다. 유성호텔은 사라져도 명맥을 유지하겠다는 취지다.

정용래 유성구청장은 “유성호텔은 사라져도 시민과 함께했던 역사는 소나무처럼 기억될 것”이라며 “소나무가 유성호텔과 온천을 추억하는 표지목으로 머물지 않고 미래의 상징물로 자리매김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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