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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차이나 신경진의 차이나는 차이나

벤처투자자 변신한 中지방정부…AI 정조준한 '허페이 모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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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신경진 베이징총국장

신경진 베이징총국장

지난달 28일 중국 안후이(安徽)성 허페이(合肥)시 스피치밸리(聲谷)에 자리한 음성인식 인공지능(AI) 대표 기업 아이플라이텍(iFlytek)을 방문했다. AI 체험관의 안내원이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귀여운 대형 트럭을 그려주세요”라고 말하자 생성형 AI 인지모델 서비스 스파크(Spark)는 날개 달린 트럭을 그려냈다. 지난해 5월 미국 오픈 AI사의 챗 GPT와 비슷한 시기에 출시된 스파크는 텍스트와 그림 생성, 수학과 논리적 추론, 컴퓨터 코딩 등 다양한 기능을 지녔다.

지난달 28일 찾아간 안후이성 허페이시의 폭스바겐 안후이 전기차 생산 라인의 기계가 전기차를 조립하고 있다. 허페이=신경진 특파원

지난달 28일 찾아간 안후이성 허페이시의 폭스바겐 안후이 전기차 생산 라인의 기계가 전기차를 조립하고 있다. 허페이=신경진 특파원

중국 최대 음성인식 AI 기업 아이플라이텍이 서비스 중인 생성형 인공지능 서비스 스파크가 그린 하늘을 나는 트럭. 허페이=신경진 특파원

중국 최대 음성인식 AI 기업 아이플라이텍이 서비스 중인 생성형 인공지능 서비스 스파크가 그린 하늘을 나는 트럭. 허페이=신경진 특파원

아이플라이텍은 지난 1999년 중국의 '칼텍'(Caltech)으로 불리는 허페이 중국과학기술대학(USTC)의 박사생이었던 류칭펑(劉慶峰·51)이 교내 벤처로 창업한 곳이다. 1층 전시실엔 사람 귀에 안 들리는 초음파를 이용해 석유화학단지의 안전사고를 예방하는 장치, 네 발로 움직이는 음성탐지 로봇 등 다양한 AI 제품이 있었다.

중국 최대 음성인식 AI 기업 아이플라이텍이 개발한 AI 교통관제 서비스. 시내 교차로 신호를 AI로 통제 전후의 차량 정체 시간을 그래프로 표시했다. 허페이=신경진 특파원

중국 최대 음성인식 AI 기업 아이플라이텍이 개발한 AI 교통관제 서비스. 시내 교차로 신호를 AI로 통제 전후의 차량 정체 시간을 그래프로 표시했다. 허페이=신경진 특파원

AI 전자칠판의 경우 중국 5만여 개 학교, 1억3000만명의 학생이 이용 중이라고 아이플라이텍 측은 소개했다. AI를 통해 허페이 전역의 교차로 신호를 통제해 차량 정체의 완화를 돕는 교통 슈퍼 브레인 서비스도 소개됐다.

지난달 28일 찾아간 안후이성 허페이시의 폭스바겐 안후이 전기차 생산 공장 관계자가 “중국에서 중국을 위해”라는 전략을 소개하고 있다. 허페이=신경진 특파원

지난달 28일 찾아간 안후이성 허페이시의 폭스바겐 안후이 전기차 생산 공장 관계자가 “중국에서 중국을 위해”라는 전략을 소개하고 있다. 허페이=신경진 특파원

허페이엔 전기차 공장도 있다. 지난해 전기차 생산량은 74만6000대로, 독일 폭스바겐도 진출해 있다. 이날 찾아간 폭스바겐의 이노베이션 허브에선 가상 3D 모델링 장비를 활용해 중국 내수 전용 신차를 개발하고 있었다. 어윈 가바르디 폭스바겐 안후이 최고경영자(CEO)는 “2030년 중국 전기차 시장 3위를 목표로 ‘중국 안에서 중국을 위해(In China For China)’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박경민 기자

박경민 기자

市정부가 투자로 기업유치

한국인에겐 '명판관 포청천'으로 알려진 포증(包拯)의 고향이자 리커창(李克强) 전 총리의 고향인 허페이는 AI·양자컴퓨팅·핵융합·바이오테크·전기차·태양광·배터리 등 각종 미래 산업의 전진기지로 탈바꿈하고 있다. 야심 찬 이름이 붙은 '퀀텀대로'에는 20개 이상의 양자 전문 기업이 양자 컴퓨팅 공급망을 갖추고 있다. 중앙일보는 파이낸셜타임스(FT) 등 외신 기자들과 함께 지난달 말 중국 국무원신문판공실과 안후이성 정부의 초청을 받아 허페이시의 첨단기업을 방문하고 관계자들을 인터뷰했다.

인구 985만 명인 허페이의 지난해 성장률은 5.8%로 전국 평균(5.2%)을 웃돌았다. 한때 낙후 지역으로 여겨졌던 허페이의 주민은 이제 첨단 산업단지를 기반으로 중국 도시 평균을 훌쩍 넘는 소득을 누리고 있다.(표)

신재민 기자

신재민 기자

허페이의 도약은 지방 정부의 과감한 투자와 민간 기업의 결합을 토대로 했다. 이같은 허페이 모델을 두고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최고의 국가 자본주의'라고 평가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 2008년 LCD 제조사 징둥팡(京東方, BOE) 투자였다. 지방 재정 수입이 160억 위안(약 3조원)에 불과한 허페이는 당시 90억 위안(1.7조원)의 자금과 토지·에너지·대출 이자 보조 등을 제공하는 우대 정책 등으로 총 175억 위안(3.3조원)을 BOE에 투자했다. 이 결과 중국 최초로 LCD 패널 6세대 생산 라인을 구축했다. 허페이시는 투자 자금을 모으기 위해 지하철 건설까지 연기했다.

2017년 DRAM 제조사 창신메모리(長鑫存儲) 설립을 위해 지분을 투자했고, 2020년엔 전기차 업체 니오(NIO)에 70억 위안(약 1.3조원)을 투자했다. 허페이시의 지원으로 위기에서 벗어난 니오는 본사와 공장 일부를 허페이로 옮겼다. 2년 만에 니오가 경영난을 극복하자 주가가 급등했고 시 정부는 투자금의 5.5배를 회수했다. BOE와 니오에 투자한 기금 '허페이젠터우(建投)'는 2019년부터 2021년까지 매년 50억 위안(9528억원)의 수익을 올렸다.

다른 대도시가 학교 지원과 주택 보급에 힘쓸 때 허페이는 유망 기업에 투자한 것이다. 허페이가 ‘벤처투자자 지방정부’라고 불리는 이유다. 뤄원산(羅文杉) 안후이성 공업정보화 부청장은 “전문가팀이 산업을 면밀하게 연구하고, 허페이의 기반 기술을 점검한 뒤 전문 기관과 협의해 투자 결정을 내렸다”고 밝혔다. 1990년대 중국의 노동력과 외국 자본을 결합한 선전(深圳) 모델이 중국 남부를 세계의 공장으로 바꿨다면 허페이 모델은 산업 고도화를 원하는 도시의 벤치마킹 대상이 되고 있다.

지난달 29일 중국의 전기차 배터리 기업인 궈쉬안(國軒) 허페이 공장 관계자가 배터리 생산 라인 현황을 설명하고 있다. 허페이=신경진 특파원

지난달 29일 중국의 전기차 배터리 기업인 궈쉬안(國軒) 허페이 공장 관계자가 배터리 생산 라인 현황을 설명하고 있다. 허페이=신경진 특파원

과기대 기반 중국판 실리콘밸리

미 스탠퍼드대학을 배경으로 미국 실리콘밸리의 글로벌 정보통신(IT) 기업이 탄생한 것처럼, 허페이 모델의 중심엔 중국 과기대가 있다. 문화대혁명(1966~76년) 당시 학자를 탄압하던 분위기에서 베이징에 있던 과기대가 1970년 허페이로 옮겨왔다.

50여년이 지난 지금 과기대는 첨단 기술의 허브로 탈바꿈했다. 과기대 물리학 연구소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앞선 핵융합 에너지 원자로 중 하나인 실험용 첨단 초전도 용기 토카막(Tokamak)을 테스트하고 있다. 유전자 가위 크리스퍼(CRISPR)를 사용한 최초의 인간 실험도 2015년 허페이 병원에서 이뤄졌다.

지난 2020년 허페이는 ‘체인 보스(Chain Boss)’ 시스템을 도입했다. 시 정부가 반도체, 양자과학, 전기차, 생명공학 등 12개 첨단 산업별 기업 체인을 만들고, 각 체인에는 큰 그림을 그리고 감독하는 정부 관료를 배치했다. 우아이화(虞愛華) 당서기가 직접 집적회로 체인 보스를 맡았고 시장이 디스플레이 체인을 맡아 챙겼다.

범용 AI 혁신 발전 행동 시작

올해 허페이는 리창(李强) 총리가 정부 업무보고에서 밝힌 ‘AI 플러스 이니셔티브’의 시범 도시로 나섰다. 지난 1월 뤄윈펑(羅雲峰) 시장은 업무보고에서 올해 6% 성장을 목표로 제시하면서 “신형 네트워크 인프라 개선을 가속화하고, 하이퍼 컴퓨팅 센터를 구축하며, 스파크 대형인지 모델의 핵심 기술 난관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아이플라이텍이 입주한 스피치밸리를 중국을 대표하는 소프트웨어 파크로 육성하겠다는 계획도 소개했다.

류칭펑 아이플라이텍 대표. 차이신 캡처

류칭펑 아이플라이텍 대표. 차이신 캡처

남대엽 계명대 교수는 중국의 AI 플러스 정책에 대해 “미국이 주도하는 하드웨어 봉쇄망을 AI 소프트웨어를 활용한 산업 고도화로 돌파하겠다는 전략”이라며 “첨단 산업을 지분 투자로 유치하는 허페이 모델은 중국과 경쟁 산업이 겹치는 한국도 적극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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