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업 키우겠다" 호주 13조 펀드…이 나라 그늘이 무서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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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의 리튬 광산 모습. 사진 필바라 미네랄스 캡처

호주의 리튬 광산 모습. 사진 필바라 미네랄스 캡처

자원대국 호주가 13조원가량의 기금을 마련해 제조업 육성에 나섰다. 최근 앤서니 앨버니지 호주 총리는 '메이드인 호주를 위한 미래법안(Future Made in Australia Act)'을 마련하고, 150억 호주달러(약 13조원)에 달하는 기금을 조성해 제조업을 활성화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에드 휴직 호주 과학산업부 장관은 "근래 들어 제조업에 역량 강화를 위한 최대 규모의 투자"라고 설명했다.

1990년대 초반만 해도 호주는 광물 채굴 산업과 제조업 투자 규모가 비슷했다. 그러나 이후 시간이 갈수록 두 산업 간 투자 규모 격차가 커졌다. 로이 그린 시드니 공대 교수는 "호주 광물 자원의 중국 수출이 늘고 여기에 호주 달러까지 강세를 보이자 근간이 되는 제조업에 대한 투자는 등한시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정근영 디자이너

정근영 디자이너

호주는 1994년부터 30여 년간 자국의 자원 수출로 활황을 누렸다. 그러나 알고 보니 '독이 든 성배'가 됐다. 대표적 예가 전기차 부품의 핵심 소재이자 '하얀 석유'로 불리는 리튬이다. 호주는 전 세계 리튬 생산량의 46.7%를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도 글로벌 공급망 등 가치사슬에서 호주가 차지하는 비중은 0.5%에 지나지 않는다.

현재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건 '세계의 공장' 중국이다. 호주로부터 리튬 정광(고순도 광물)을 수입해 중국 내 정제 시설에서 노트북·핸드폰 등에 사용되는 탄산리튬, 전기차 배터리 제조에 쓰이는 수산화 리튬 등으로 전환해 되팔고 있다. 그린 교수는 "호주는 원자재 수출에 의존하면서 제조업에 대한 지원은 줄었고, 이 결과 '세계의 채석장'으로 전락했다"고 설명했다.

중국에 대한 의존도가 커진 것도 문제다. 양국 관계가 경색될 때면 경제가 휘청거릴만큼 타격을 입게 된다. 중국은 2021년 3월부터 호주산 와인에 대해 최대 218%의 반덤핑 관세를 부과하고, 자국민에게 호주 유학과 관광을 자제하도록 했다. 호주가 2018년 중국 화웨이의 5G 네트워크 참여를 금지하고, 2020년 코로나 19의 기원에 대한 국제 조사를 요구한 데 대한 보복성 제재였다. 지난 2022년 중국에 유화적인 노동당 정권이 들어서고 지난해 11월 앤서니 앨버니지 총리가 중국을 찾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만나는 등 해빙 분위기가 조성된 뒤에야 와인 관세 등이 철폐됐다.

미국의 동맹국이자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출범한 안보협력체 오커스(AUKUS)의 일원인 호주에겐 '메이드 인 호주'를 달성하지 못하면 언제든 중국의 경제 보복에 휘둘릴 우려가 크다. 호주 최대 노조인 호주노동자연맹(AWU)은 중국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핵심 광물 수출에 관세를 부과하고, 해당 수익으로 현지에서 광물 가공품을 제조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지난해 앤서니 앨버니지 호주 총리가 자국 태양광 패널 제조 스타트업 선드라이브 솔라를 방문해 관련 사업에 대해 얘기를 듣고 있다. 호주 정부는 지난달 28일(현지시간) 자국 태양광 패널 제조 확대를 위해  10억 호주달러(약 8900 억원)의 기금을 마련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사진 앤서니 앨버니지 호주 총리 공식 SNS

지난해 앤서니 앨버니지 호주 총리가 자국 태양광 패널 제조 스타트업 선드라이브 솔라를 방문해 관련 사업에 대해 얘기를 듣고 있다. 호주 정부는 지난달 28일(현지시간) 자국 태양광 패널 제조 확대를 위해 10억 호주달러(약 8900 억원)의 기금을 마련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사진 앤서니 앨버니지 호주 총리 공식 SNS

호주 정부는 태양광 패널 등 신재생 에너지 분야에 주목하고 있다. 호주는 지난 5년간 태양광 발전의 보급으로 연간 에너지 탄소 총배출량의 약 10%를 줄이고 있는 청정에너지 주도국이다. 그런데 태양광 패널의 대다수가 중국산이다.

앤서니 앨버니지 총리는 지난달 28일 호주 현지의 태양광 패널 제조 확대를 돕기 위해 10억 호주달러(약 8900억원)의 기금을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성명을 통해 "호주는 넷 제로(탄소 중립) 전환의 중심 역할을 하는 데 필요한 모든 금속과 중요 광물을 보유하고 있고, 가정 3곳 중 1곳은 지붕에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고 있다"며 "그런데도 태양광 패널 중 호주산은 1%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호주 정부는 자국 태양광 패널 제조 스타트업 등에 세금 감면과 직접 지원 등의 방법으로 관련 산업 주도권을 가져오겠다는 구상이다. 이와 관련 호주 언론들은 "미국과 유럽연합(EU), 일본, 한국 등이 제조업을 포함해 자국 산업 기반을 탄탄히 하기 위해 투자하고 있다"며 "이는 낡은 보호무역주의 혹은 고립주의가 아니라 새로운 경쟁의 일환"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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