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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데이 칼럼] AI 기반의 제조업 파운드리 혁신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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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5호 31면

차상균 서울대 데이터사이언스대학원 특임교수(초대 원장)

차상균 서울대 데이터사이언스대학원 특임교수(초대 원장)

최근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중년 창업의 득’이라는 제목으로 올해 93세를 맞는 TSMC 창업자 모리스 창 박사의 인생 여정을 깊이 있게 취재한 기사를 게재했다. 1987년 모리스 창은 보통 사람 같으면 은퇴할 나이에 기존에 없던 파운드리 사업 모델을 만들어 TSMC를 창업했다. 이 회사는 2023년 기준으로 528개 고객사 1만1895종의 반도체 칩을 주문 생산하는 세계 제1의 반도체 제조 서비스 기업으로 성장했다.

인공지능(AI) 시대의 도래로 TSMC의 시가총액은 7635억 달러로 반도체 업계 2위가 됐다. 시가총액 1위 반도체 기업은 TSMC 파운드리 서비스가 없었으면 존재하지 않았을 2조2700억 달러의 엔비디아다.

모리스 창 도전으로 TSMC 성공
전략적 변곡점서 현명하게 선택
AI가 새 파운드리 만들어낼 것
다양한 제조업 보유 한국엔 기회

선데이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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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 엔비디아, AMD가 2023년 기준으로 TSMC의 1, 2, 3위의 고객들이다. 각각 TSMC 매출액의 25%, 11%, 7%를 차지한다. 그 뒤로 퀄컴, 미디아테크, 브로드컴 같은 기업이 있다. 낙후된 자체 반도체 라인을 가지고 있는 인텔도 TSMC에 의존하고 있다. 5㎚ 반도체 생산 시장의 70~80%, 3㎚ 시장의 90% 이상을 TSMC가 점유하고 있다.

이 TSMC의 성공은 모리스 창의 도전적 인생과 혜안이 없었다면 힘들었을 것이다. 그는 반도체 산업이 전략적 변곡점을 맞은 1985년 미국에서 타이완으로 옮겨와 타이완 공업기술연구원(ITRI) 원장을 맡았다. 타이완이 무에서 반도체 강국으로 가는 초석을 놓은 포석이었다. TSMC는 준공기업 형태로 출발했다. 정부가 48%, 유럽의 필립스가 27%, 타이완 기업들이 25%의 초기 자본을 조성했다.

전례 없던 사업 모델의 TSMC를 성공적으로 성장시킨 모리스 창은 2005년 74세 때 고령을 이유로 은퇴했다. 하지만 2009년 회사가 어려워지자 78세의 나이에 최고경영자(CEO)로 복귀해 금융위기에도 불구하고 연구·개발·생산 등 투자를 선제적으로 확대해 TSMC를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파운드리 서비스 기업으로 만들었다. 이후 2018년 다시 은퇴했다. 그는 작년 가을, 고령에도 불구하고 학사와 석사를 받았던  매사추세츠공대(MIT)에서 그의 경험을 공유하는 강연을 했다. 2014년에는 전기공학 박사를 받았던 스탠퍼드대에서 엔지니어링 히어로 상을 받고 당시 총장이었던 존 헤네시 구글 알파벳 이사회 의장과 엔비디아 CEO 젠슨 황과 대담했다.

그는 타이완으로 오기 전 1958년부터 83년까지 25년 동안 미국 텍사스 인스트루먼트(TI) 반도체 분야에서 일했다. 1958년 집적회로를 개발한 노벨상 수상자 잭 킬비와 함께 무명의 반도체 기업 TI에 입사한 모리스 창은 IBM을 제치고 TI를 제1의 반도체 기업으로 만들었다. 이 공로로 TI 반도체 사업 부문의 수장이 됐다.

그가 TI를 떠날 때 TI의 반도체 사업 비중은 전체 사업의 절반을 차지했다. 이때는 일본 정부의 지원을 받고 성장한 일본 반도체 기업들이 TI, 인텔, IBM 같은 미국 반도체 기업들을 위협하던 때였다. 모리스 창은 이 산업의 전략적 변곡점에서 TI가 반도체 사업에 집중해야 한다는 견해를 폈다. 하지만 TI는 반대로 사업 다각화의 길을 선택했고 CEO가 되지 못한 모리스 창은 TI를 떠났다.

모리스 창이 타이완으로 옮겨간 1985년, 스탠퍼드대 박사 과정에 있던 나는 TI 본사 AI 연구원에서 6개월 동안 연구했다. TI의 메모리 사업을 제외한 나머지 절반은 국방용 반도체와 인공지능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등이 차지했다. 40년 전이지만 당시 TI의 AI 연구원 출입문은 음성 인식을 통해서만 열렸다. 나는 TI가 설계하고 제조한 AI 컴퓨터에서 자연어 생성 소프트웨어를 만들었다.

반도체 산업을 아직 시작하지 않은 한국에서 온 나는 TI의 반도체 생산 라인들에 압도됐다. 이 모두가 TI를 떠난 중국인 반도체 수장이 남긴 유산이었다. 그리고 이 중국인이 TSMC 창업자인 것은 나중에 알게 됐다. 돌이켜 보면 그의 TI 경험이 없었다면 TSMC의 혁신적 파운드리 사업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작년 3월 나는 모리스 창의 파운드리 창업 현장을 둘러보기 위해 TSMC 본사를 방문했다. TSMC 최초의 빌딩 A에는 창신(Innovation) 박물관이 들어서 있다. 자체 반도체 제조 시설을 구축할 자본이 없는 팹리스 기업의 반도체를 생산해주는 파운드리 사업 모델을 만든 역사적 기록과 함께 TSMC의 최신 기술과 생산 라인들을 홍보하는 공간이다. 이 박물관은 고객과 절대로 경쟁하지 않고, 고객의 성공이 TSMC의 성공이라는 신뢰를 주기 위한 파운드리 서비스 기업 특유의 모습을 보여주는 상징적 공간이다.

생성형 AI 시대에는 거의 모든 제조업 분야에서 제품 설계를 데이터 기반으로 자동화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조선업에서 HD 중공업, 한화 오션, 삼성중공업이 보유한 데이터와 경험, 자본을 모아 선박 설계 자동화 AI 플랫폼 기업을 만들면 이 설계 플랫폼을 기반으로 전 세계 선박 제조 시장을 지배할 수 있는 파운드리 기업으로 진화할 수 있다. 생성형 AI로 구동되는 휴머노이드 로봇이 TSMC 파운드리에서 진일보한 새로운 모습의 파운드리를 만들어낼 것이다. 다양한 제조업을 보유한 대한민국이 새로운 발상으로 세계적으로 선도할 수 있는 전략적 변곡점이다. TSMC와 모리스 창 리더십이 우리에게 필요한 때다.

차상균 서울대 데이터사이언스대학원 특임교수(초대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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