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에디터 프리즘] 알리깡과 테무깡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885호 30면

황정일 경제산업에디터

황정일 경제산업에디터

경쟁사보다 100원이라도 더 싸야 한다. 이는 이커머스가 가진 태생적 숙명이다. 실시간 가격 비교가 힘든 오프라인 쇼핑몰과 달리 온라인 쇼핑몰은 가격이 더 저렴한 곳을 실시간으로 알려주는 사이트나 애플리케이션이 있고, 이커머스 자체적으로 ‘최저가격’ 순으로 상품을 노출하기도 한다.

똑같은 제품이니 소비자 입장에서는 100원이라도 더 싼 곳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이커머스 내 상점 격인 판매자(셀러)들은 그래서 ‘최저가’에 목을 맬 수밖에 없다. 최근 중국의 이커머스가 빠르게 한국시장을 장악해 가고 있는 이유도 가격에 있다. 알리익스프레스(알리)·테무·쉬인과 같은 중국의 이커머스(C커머스)는 최저가를 넘어 ‘초저가’ 전략으로 소비자를 공략하고 있다.

소비자 피해, 유통 생태계 교란
규제 풀어 산업 경쟁력 제고해야

소비자 입장에서는 국내 판매가격 대비 절반 수준인 상품이 수두룩하니 피할 이유가 없다. 특히 젊은 소비층 사이에서 인기다. 유튜브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테무깡’ ‘알리깡’ 같은 신조어가 자주 올라오는데, 이는 C커머스에서 산 초저가 상품의 택배 상자를 개봉하는 영상 콘텐트다. 클릭 뷰와 구독자 수가 금방 늘어나 마치 ‘카드깡’ 하듯 수입을 쉽게 올릴 수 있다고 해서 ‘깡’으로 불린다.

C커머스에서 산 물건을 중고로 되파는 일도 흔하다. 무료 배송 금액을 채우기 위해 이미 있거나, 필요 없는 물건을 산 뒤 중고거래 앱에서 파는 식이다. 그래도 남는 장사라는 후기 글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국내 판매가의 절반 가격이니, 중고로 되팔아도 손해가 아니라는 얘기다. 심지어 각종 할인 마케팅을 활용하면 중고로 되팔아 수익을 낼 수 있다는 글도 올라온다.

이래저래 고물가에 시름 하는 소비자에게는 나쁠 게 없어 보인다. 그런데 C커머스가 이렇게 한국시장을 잠식할 동안 국내 소비자 피해는 사실상 방치되고 있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C커머스를 비롯해 해외 이커머스를 통해 물품을 샀다가 피해를 본 상담 건수는 1만1789건으로, 2022년보다 68.9% 급증했다. 특히 C커머스의 선두 주자 알리 상담 건수는 2022년 228건에서 지난해 673건으로 3배 넘게 늘었다.

이 가운데 구제 사례는 겨우 30건이다. 방치가 아니라 버려진 수준이다. 불량이 배송되거나, 배송 도중 파손되는 일이 흔하고 환불하기도 까다롭다. 1000원대의 생활용품이거나 저가 상품이라면 환불보다는 버리고 새로 사는 게 오히려 속 편하다. 도를 넘는 광고·마케팅도 불편하긴 마찬가지다. 테무의 ‘친구 초대 이벤트’는 마치 다단계와 유사한데, 테무는 이 같은 마케팅으로 2월에만 한국에서 581만 명을 모았다고 한다.

유통 생태계 교란도 심각한 수준이다. 저렴한 중국 제품에 대한 접촉 빈도가 높아지면 국내 제조사 제품은 경쟁력을 잃을 수밖에 없다. 지난해 6조원에 달하는 해외 직구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물품이 의류·패션 관련 상품(3조905억원, 45.7%)이었는데, 이는 곧 국내 의류·신발·잡화 등을 제조해 판매하는 국내 중소기업에 타격을 입혔다. 인터넷 통신판매업계는 이미 줄폐업이 이어지고 있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지난해 폐업 신고를 한 인터넷 통신판매 업체는 7만8580곳으로, 집계 이래 최대치였다.

C커머스가 보여주고 있듯 쇼핑에는 이제 국경이 무의미해졌다. 가격이 싸고 서비스가 좋은 곳에 몰리는 소비자를 탓할 수도 없다. 현명한 소비자를 붙잡으려면 국내 유통 생태계가 C커머스 등과 싸워 이길 수 있는 체력을 갖춰야 한다. 정부 보호 아래 가격이나 품질, 서비스 개선에 소홀했다면 체질 개선의 계기로 삼을 만하다. 물론, 역차별 해소 등을 위해서는 정부의 개입도 일정 부분 필요하다. 하지만 C커머스에 대한 규제보다는 불필요한 규제를 풀어 기업이나 유통 생태계가 체력을 키워나갈 수 있도록 하는 게 더 중요해 보인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