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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억은 별것 아냐" 판사 일침…'백현동 수사 무마' 檢 구형보다 셌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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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벽 아파트' 라 불리는 백현동 아파트 지대. 네이버 항공뷰]

'옹벽 아파트' 라 불리는 백현동 아파트 지대. 네이버 항공뷰]

13억원은 별 것 아닙니다. 수사기관이 적정하고 공정하게 공무를 집행할 거라고 기대하는 사회 일반의 신뢰를 해한 것에 비하면 별 것 아니란 말입니다.

“검찰과 경찰의 백현동 수사를 무마해줄 수 있다”며 백현동 개발업자로부터 13억원 넘는 돈을 받아간 사건 브로커에게 1심 법원이 검찰의 구형보다 무거운 형을 선고하며 밝힌 이유다.

12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부(부장 허경무)는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 혐의로 구속기소된 이동규 전 KH부동산디벨롭먼트 회장에게 징역 4년을 선고했다. 아울러 13억 3000여만원의 추징을 명령했다. 이날 법원의 선고는 지난달 결심공판에서 징역 3년이 적정하다는 검찰 구형보다 형량을 1년 늘린 것이다.

이 전 회장은 백현동 개발 민간업자인 정바울 아시아디벨로퍼 회장이 검·경 수사를 받게 되자 2022년 5월부터 “정치권 인맥과 전관 변호사 등을 통해 경찰에 힘을 쓰겠다” “이런 사건은 법무부 장관이나 검찰총장에게 이야기해야 한다” “엊그제 영장 전담 판사와 함께 골프 친 사람을 찾아냈다”며 13억 3616만원을 뜯어낸 혐의를 받는다.

이동규 전 국민의힘 중앙당 서울후원회장 겸 부동산 중개법인 KH부동디벨롭먼트 회장. 사진 유튜브 'Hohyeon Song' 채널 캡처

이동규 전 국민의힘 중앙당 서울후원회장 겸 부동산 중개법인 KH부동디벨롭먼트 회장. 사진 유튜브 'Hohyeon Song' 채널 캡처

이 전 회장은 검찰 등 수사 단계에서는 범행을 부인하다 재판에 온 뒤로는 돈 받은 사실을 모두 인정했다. 피고인이 자백하고 반성할 경우 형을 낮춰주는 것이 통상적이지만 1심 재판부의 판단은 달랐다. 재판장인 허 부장판사는 “죄질이 불량하고 범죄 후 정황이 좋지 못해 검사의 구형량을 넘어서 엄중하게 처벌하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했다.

허 부장판사는 “정 회장은 피고인이 정치권 또는 수사기관에 영향력을 행사해 자신에 대한 수사를 무마하거나 불구속 상태에서 수사와 재판이 기대되길 바라 수차례에 걸쳐 고액을 보냈다”며 “이건 기본적으로 정 회장에게 재산적 손실이 일어나는 것이지만, 그 손실은 사회적 신뢰 저하에 비하면 별것 아니다”고 했다.

다만 “정 회장으로부터 돈을 받은 다음 직접적으로 수사기관에 청탁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고 봤다. 구속을 막아주겠단 얘기와 달리 정 회장은 경찰에선 불구속 수사를 받다가 검찰에 넘겨진 뒤 지난해 6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 등 혐의로 구속됐다. 하지만 재판부는 “부정한 청탁으로 나아가지 않았다 해도 사회적 신뢰를 떨어뜨렸다는 점에서 위법성을 낮게 평가해선 안 된다”고 했다.

이 전 회장은 돈을 받은 건 인정하지만 정 회장과는 동업 관계로 금전소비대차 계약이나 용역의 대가로 정당하게 받은 돈도 있으니 감안해 달라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이를 오히려 “진정으로 반성하고 있는 것인지 의구심을 품게 한다”고 봤다. 그가 함께했다고 주장한 사업에 대해 정 회장이나 직원 등 주변 인물은 부정하거나 모른다고 했고 용역 대가 등은 별도로 챙긴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한편 검찰은 이 전 회장이 실제로 정 회장에게 임정혁 전 대검찰청 차장검사와 곽정기 전 총경을 소개해줬다고 본다. 두 사람도 지난 1월 변호사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같은 법원 다른 재판부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검찰은 이 재판에 이 회장을 증인으로 부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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