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허지원의 마음상담소

그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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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허지원 고려대 심리학부 교수

허지원 고려대 심리학부 교수

자기공명영상(MRI) 연구를 할 때면 개인의 뇌 구조 및 기능을 보다 정확히 설명하기 위해 참여자의 지능도 함께 측정합니다. 높은 지능이라는 것이 개인의 성숙이나 행복감에 절대적인 자원은 아니지만 많은 사람이 가지고 싶어하는 자원 중 하나임은 분명합니다. 그러다 보니 참여자의 지능이 우수할 때면 이 소식을 전하는 저도 함께 들떴습니다. 특히 여러 이유로 자신의 지능은 낮을 것이라 지레 예측하던 친구들에게 ‘뜻밖의’ 좋은 결과를 들려주면 이들이 기뻐하며 자신에 대해 긍정하기 시작할 거라는 기대를 하기도 했습니다.

개인이 삶을 대하는 태도가 중요
부정적인 생각에 갇히지 말고
노력, 성취, 선한 태도 직시해야

마음상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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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놀랍게도, 대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자신을 과소평가하거나 부당하게 평가절하 당한 역사가 있는 이들은, 자신의 탁월한 지능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결과가 잘못 나왔을 것이라며 머쓱하다는 듯 웃거나 이것저것 궁금해할 법도 한데 질문 하나 없이 묵묵히 듣고만 있다 연구실을 떠나는 분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자신이나 세상을 바라보는 마음의 틀이 있습니다. ‘나는 사람들에게 실망을 안겨 왔고 민폐를 끼치는 사람이고 부족한 사람이야.’ ‘세상은 가혹하고, 믿을 수 없고, 우울한 사건들이 일어나는 곳이야.’ 그러나 이는 단지 머릿속에서 재생되는 사건입니다. 그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나의 기분과 여러 생각이 고약한 장난을 치는 것입니다.

실제로 여러 형용사 목록을 이용한 실험에서 우울한 분들은 자꾸만 부정적인 수식어를 자신에게 끌어다 붙입니다. 어리석은, 실패한, 슬픈 등의 단어 말입니다. 반면에 긍정적인 형용사들, 아름답고 재능 있는 사람처럼 보이는 수식어는 자꾸만 멀리 밀어냅니다. 저희 연구실에서 진행했던 MRI 연구에서도 극적인 뇌 활성화 패턴이 드러났습니다. 우울이 높고 자해 행동을 하는 분들의 뇌는 긍정적인 형용사를 처리할 때엔 마치 이질적이고 낯선 자극을 바라보듯 거리를 둡니다.

임상심리전문가가 객관적인 자료를 손에 들고 소리치며 ‘아니, 참여자님 지능이 정말 높다니까요!’ 하며 들들 볶아대도 그저 웃어넘기려 하는 것은 마음의 틀이 이렇게 긍정적인 자극들과 정보들에 철벽을 치고 ‘정확한 사실’을 회피하기 때문입니다. ‘나의 것이 아니다.’ 그렇게 자신의 세상을 좁혀가고 자신이 꿈꿀 수 있는 것들을 제한합니다.

‘우울한 게 아니고 그게 현실적인 것’이라는 항변도 있겠지만, 그렇지도 않습니다. 2019년 발표된 한 연구에서는 우울증이 있는 분들의 현실 예측이 오히려 부정확하다고 말합니다. 우울한 분들은 자신들이 4일 후에 더 우울할 것이라 예측했지만, 그 예측은 대개 틀렸습니다.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습니다. 우울하지 않은 분들은 오히려 더 현실적인 예측을 했습니다.

때로는 ‘내가 더 돈을 잘 벌었다면, 더 건강했다면, 혹은 더 똑똑했다면 나도 세상을 아름답게 봤을 것’이라는 생각도 말씀하십니다. ‘생각들’일 뿐입니다. 2023년 여름, 1만6000여명의 성인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연구가 발표되었습니다. 대체 어떤 사람들이 ‘세상은 안전하고 즐거운 곳이며, 계속 나아지고 있다’는 신념을 가졌는지 살핀 바 있습니다. 그 결과, 학대와 같은 아동기 역경을 경험하지 않았다거나 사회경제적 위치, 건강 상태, 생물학적 성별, 사는 곳 등에서 ‘특권적인 삶’을 산다고 해서 세상을 딱히 더 밝고 맑게 보는 것은 아닌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그 어떤 유리한 조건도, 개인이 삶을 대하는 태도를 예측하지 못했습니다. 저자들은 개인의 유전적 특성에 더해 가족이나 주변의 관점에 전염되어 개인의 세계관이 형성된다고 설명합니다. 통념과 달리 어떤 특정한 사건이나 유리한 조건이 아닌, 우리의 생각들만이 우리의 생각을 규정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여 우리의 힘과 가능성에 대해 더 크게 떠들었으면 좋겠습니다. 부당하고 가혹한 상황을 부인하고 감정을 회피하는, 유독한 긍정성(toxic positivity)으로 자신을 기만하고 정신승리 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생각이 아닌 사실 그대로를 보세요. 내가 그동안 기울인 노력과 성취, 사람들이 내게 했던 칭찬과 감사들, 그리고 여러 역경에도 불구하고 지키고자 했던 다정하고 선한 태도들, 그 모든 경험이 사실입니다. 밀어내려 하지 말아요. 이 모든 것이 당신의 삶이 맞습니다. 기분과 생각들이 치는 장난에 장단 맞추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서 있는 자리에서 다시 나의 세계를 구축하세요. 부정적인 생각의 테두리 안에서만 빙빙 돌며 놓쳐왔던 나 자신을 다시 정확히 바라보세요. 남의 말들에 치여서 죄악시하거나 모르는 척했던 나만의 기대, 나의 목표를 다시 꺼내 들어요. 이것이 당신의 세상이 됩니다. 무엇보다, 내가 그렇다면 그런 겁니다.

허지원 고려대 심리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