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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배들에 건축 여행 장학금…고국에 빚진 마음 갚는거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0면

자신이 설계한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앞에 선 김태수씨. “주변 경관과 잘 어우러지게 하는 게 설계의 핵심이었다”고 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자신이 설계한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앞에 선 김태수씨. “주변 경관과 잘 어우러지게 하는 게 설계의 핵심이었다”고 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지난 6일 오후 서울 세종대로 도시건축전시관 도서관에 국내 건축 관련 전문가 60여 명이 모였다.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을 설계한 우규승씨를 비롯해 최두남 서울대 명예교수, 민현식 전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장, 김미현 목천김정식문화재단이사장, 전봉희 서울대 교수 등이 참석했다. 김태수 해외건축여행 장학제(이하 ‘김태수 장학제’)의 30주년 기념집 『포트폴리오와 여행』 출간을 기념하는 자리였다. 이 행사의 시발점을 마련한 재미 건축가 김태수(87)씨도 8년 만에 한국을 찾아 자리를 함께했다.

과천 국립현대미술관과 서울 관훈동 금호미술관, 천안 교보생명 연수원 등을 설계한 김씨는 1991년 장학재단(T. S. Kim Architectural Fellowship Foundation)을 설립하고 젊은 건축인의 해외여행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지난 5일 그가 설계해 1986년 개관한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그를 만났다.

당시 장학재단을 만든 이유는.
“고국에 늘 빚진 마음이 있었다. 대학 때부터 한국 건축 발전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자고 생각했는데, 1961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 뒤 미국에서 줄곧 활동해 왔다. 작게나마 도움이 될 일을 하고 싶어 시작한 일이었다.”

장학생은 해외 유학을 다녀오지 않은 건축계 실무자 중에서 포트폴리오를 심사해 뽑았다. 1992년 첫 수상자를 뽑은 이래 지난해까지 32명에게 혜택이 주어졌다. 처음엔 미화 8000달러를 수여하는 것으로 시작했으나 몇 차례에 걸쳐 액수를 늘려 왔으며, 2022년 우규승 건축가가 10만 달러를 기증하면서 1만7000달러를 수여하고 있다.

왜 여행 장학금인가.
“미국에서 경험해 보니 건축 대학에서 여행 장학금을 상으로 수여하는 경우가 많았다. 당시 한국에서 해외여행 자유화가 시작될 무렵이었고. 건축가에게 여행은 정말 중요하다. 건축은 이미지로 보는 것이 아니라 직접 가 보고 경험해야 한다.”

김씨는 “그동안 선정된 30여 명 중 15명의 건축가가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며 “건축 일을 계속하지 않는 분도 있다. 하지만 그분들이 젊었을 때 받은 건축 교육과 건축 여행 경험이 삶에 많은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 믿는다. 그게 우리 모두의 역사이며 자산”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서울대 건축과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예일대 건축대학원에서 수학했다. 1970년 코네티컷주 주도인 하트퍼드시에 건축사무소를 설립해 활동해 왔다. 미국에서 ‘밴 블록 주택’이라는 저소득층을 위한 공공건축을 통해 주목받았고, 1970년대 후반 미국 뉴잉글랜드 지역의 자연경관과 조화를 이룬 ‘미들버리 초등학교’를 설계해 세계 유수의 건축 매체에 소개되기도 했다. 이밖에 미국 해군 잠수함 훈련학교, 튀니지 미국 대사관 등을 설계했다. 국내에선 교보생명 연수원, 대전 LG화학 기술연구원 등을 설계했다.

“1961년 미국으로 건너가 발달한 건축 문화를 보고 받은 충격이 컸다”는 그는 “그러나 남의 것을 흉내내면 안 된다는 걸 깨닫고 ‘나만의 것’에 집중하며 차츰 자신감을 얻어 졸업 땐 18명 중 3명 안에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웅장한 서양식 건축물을 보며 자라지 않았지만, 초가집 여러 채가 옹기종기 모여 자연과 조화를 이룬 모습, 웅장하면서도 아기자기한 한국의 산세를 보며 살아온 게 모두 내 자산임을 알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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