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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버틴 영끌족의 눈물…“이자만 4000만원 냈는데 집값 계속 떨어져 1억 손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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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영끌족

영끌족

최근 회사원 이모(39)씨는 그가 거주하는 서울 도봉구 A 아파트(전용면적 84㎡)에서 6억3000만원 ‘급매물’이 나왔다는 소식에 깜짝 놀랐다. 2020년 말 이씨는 이 단지 내 같은 평형 아파트를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은 대출)로 약 7억원에 샀다. 집값의 절반은 주택담보대출(이하 주담대)과 신용대출로 마련했다. 지난 3년간 대출이자만 갚는데 4000만원(원금 제외)을 쓴 것까지 따지면 돈을 벌긴커녕 1억원 넘게 손해를 본 셈이다.

이씨는 “주담대 금리가 작년보다 하락했지만, 매달 원리금 납부로 170만원씩 나간다”며 “(집값이 회복하지 않으면) 집을 보유하는 게 손해라, 지금이라도 팔아야 할지 고민된다”고 토로했다.

아파트값이 치솟던 2021년 전후, 주택 구매 ‘막차’를 탔던 영끌족의 한숨이 깊어진다. 고금리와의 고통스런 동거가 지속되고, 집값 회복세가 더디면서 집에 쏟은 금융 비용이 커지고 있어서다. 요즘 대출 금리는 4~5%대다. 4대 시중은행의 주택담보대출 변동금리(평균치)는 지난 5일 기준 연 4.48~5.58%다. 상단 금리가 6%선을 넘어섰던 지난해 초(연 5.48~6.43%)와 비교하면 오름세가 한풀 꺾였지만, 연 4~5%대 금리는 여전히 높다. 현재 주담대 고정금리(연 3.59~4.69%)도 최고 금리는 4% 중반대다.

문제는 한국은 물론 미국이 인플레이션(물가상승) 우려에 기준금리 인하 시점을 늦추면서 고금리가 당분간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은행권 관계자는 “이달 들어 은행채 등 대출 지표금리가 소폭 오른 데다 정부가 가계대출을 억제하고 있어 대출 금리가 (현 수준보다) 급격히 하락하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더는 못 버티는 영끌족…지난달 임의경매 11년 만에 최대

요즘 영끌족이 스트레스를 겪는 가장 큰 원인은 집값이 샀을 때의 가격에도 못 미친다는 데 있다. 최근 서울은 강남권을 중심으로 아파트값이 소폭 올랐지만, 고점을 찍었던 2022년 초와 비교하면 여전히 10% 이상 하락했다.

함영진 우리은행 부동산리서치랩장은 “요즘 전국 아파트 거래량은 한 달 평균 3만 건, 서울 아파트는 2000~3000건 거래돼 부동산 경기가 활황이었던 시기의 20~30% 수준에 불과하다”며 “기준금리가 본격적으로 인하되고, 경기가 회복해야 집값도 반등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영끌족을 더 힘들게 하는 것은 이자 부담과 집값 하락 ‘이중고’다. 금융투자업계에선 급증하는 임의경매가 그 신호로 해석한다. 임의경매는 아파트 등 부동산을 담보로 돈을 빌린 대출자(채무자)가 이자를 제때 갚지 못하면 채권자가 대출금 회수를 위해 담보물을 경매에 넘기는 절차다.

법원 등기정보광장 자료에 따르면 지난달 집합건물(아파트·오피스텔·다세대주택 등) 임의경매 개시 결정 등기 신청 건수는 5336건이다. 지난해 같은 기간(3086건) 대비 72.8% 늘었을 뿐 아니라 2013년 1월 이후 가장 많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영끌족이 빚을 감당하지 못하고 주택을 법원 경매로 넘기는 사례가 늘 것으로 예상했다. 경·공매 데이터 전문기업 지지옥션의 이주현 전문위원은 “현재 임의경매는 코로나19 직전 집을 샀다가 경기가 어려워지면서 2금융권이나 대부업체에서 돈을 빌렸다가 빚을 갚지 못해 (집이) 경매로 넘어간 경우가 많다”면서 “하지만 점차 코로나19 이후 집값이 정점에 달았을 때 무리하게 빚내서 집을 마련했던 영끌족의 주택도 지방을 중심으로 경매 시장에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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