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때도 맹활약…미국이 탐내는 한국의 105㎜ 포탄 [Focus 인사이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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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절하게 대한민국을 쳐다보는 이유

2022년 2월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전쟁이 발발했을 때만 해도, 전력이 우세한 러시아가 쉽게 승리할 것이라고 예상한 이들이 많았다. 하지만 우크라이나의 결사 항전과 서방의 대대적인 지원에 힘입어 그해 가을부터 전선이 소강상태에 빠졌다. 그렇게 팽팽한 대치상태로 장기전으로 접어들자 전쟁 물자의 소비가 급속도로 늘어났다. 그중에서도 포탄 부족은 양측 모두에게 커다란 고민거리가 되었다.

건십(Gun Ship)으로 불리는 AC-130U 공격기에 장착된 M102(가신을 제거한 M101 파생형) 105㎜ 곡사포에 포탄을 장전하는 모습. 현재 해당 포탄을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는 대한민국을 보는 시선이 뜨겁다. 위키피디아

건십(Gun Ship)으로 불리는 AC-130U 공격기에 장착된 M102(가신을 제거한 M101 파생형) 105㎜ 곡사포에 포탄을 장전하는 모습. 현재 해당 포탄을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는 대한민국을 보는 시선이 뜨겁다. 위키피디아

푸틴이 포탄 문제로 김정은에게 매달리는 모습은 전쟁 전이라면 상상하지 못한 장면이었다. 우크라이나의 상황은 더욱 나빠서 현재 포탄 사용량이 러시아의 20%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미국을 위시한 나토 회원국이 도움을 주고 있으나, 이들도 냉전 종식 후 생산 능력이 감소한 상태여서 어려움이 많다. 그래서 서방 국가 중에서 상대적으로 포탄 보유량이 많고 생산도 원활히 이루어지는 우리나라를 바라보는 시선이 뜨겁다.

대한민국은 러시아와의 외교관계를 고려해 미국이 자신들의 포탄을 우크라이나에 공여하면 우리가 미국의 재고를 채워주는 방식으로 155㎜ 포탄을 간접 지원했다. 그런데 지난 3월 26일, 흥미로운 미국발 주장이 보도됐다. 한국이 340만 발을 보유하고 있어 여유가 있는 105㎜ 포탄을 위에 언급한 방식으로 미국을 통해 우크라이나에 공급하고, 추후 미국이 155㎜ 포탄으로 상환하자는 내용이었다.

미국 정부의 공식 의견은 아니고 싱크 탱크인 CSIS(국제전략문제연구소) 연구원의 주장일 뿐이어서 실현 가능성은 불투명하다. 그런데 거론된 105㎜ 포탄을 사용하는 M101(과거 제식명 M2) 계열 곡사포는 1940년부터 사용된 구형 무기다. 그래서 현재 운용 중인 나라가 많지 않고 포탄 생산량도 마찬가지다. 원래 우크라이나군이 운용하던 무기는 아니었으나, 전쟁 발발 후 영국ㆍ미국ㆍ이탈리아로부터 100여 문을 지원받아 사용 중이다.

사격 훈련 중인 KM101A1 105㎜ 곡사포. 현재 국군 포병의 주력은 아니나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위키피디아

사격 훈련 중인 KM101A1 105㎜ 곡사포. 현재 국군 포병의 주력은 아니나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위키피디아

그런데 CSIS의 주장대로 대량으로 105㎜ 포탄의 공급이 이루어지더라도 기대만큼 효과를 발휘할지는 미지수다. 일단 105㎜ 곡사포는 155㎜ 곡사포보다 사거리가 짧고 위력이 떨어진다. 물론 없는 것보다야 낫고 우크라이나가 주는 대로 무기를 받아 싸우는 처지여도 전장이 거대한 평원이어서 이왕이면 좀 더 안전한 먼 곳에서 사격할 수 있고 타격 효과도 큰 155㎜ 곡사포를 선호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압도적 적의 발목을 잡은 활약

앞에 언급된 포탄의 재고량으로 알 수 있듯이, 현재 대한민국은 전 세계에서 105㎜ 곡사포를 가장 많이 보유한 나라다. K9, K55 같은 155㎜ 자주곡사포와 KH179 155㎜ 견인곡사포가 국군의 주력이 됐음에도 M101은 자주포로도 개량해서 사용하고 있을 정도다. 사거리가 짧아도 우크라이나와 달리 국토 대부분이 산악인 한반도에서는 105㎜ 곡사포가 담당할 수 있는 역할이 여전히 많기 때문이다.

M101 105㎜ 곡사포를 자주포로 개량한 K105A1 풍익. 적은 병사로 쉽고 신속하게 운용할 수 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M101 105㎜ 곡사포를 자주포로 개량한 K105A1 풍익. 적은 병사로 쉽고 신속하게 운용할 수 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105㎜ 곡사포는 6ㆍ25전쟁 개전 당시부터 놀라운 활약을 펼쳤다. 3일 만에 서울을 내주었기에 일방적 패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지만, 남침 당시 수적으로 2배, 화력까지 환산하면 5배가 넘는 전력을 보유한 북한군이 38선에서 50㎞ 떨어진 서울까지 오는데, 3일이 걸렸다면 결코 국군이 쉽게 밀린 것이 아니었다. 실제로 4개의 남침 축선 중에서 의정부 축선을 제외한 나머지 지역에서 북한군은 상당히 고전했다.

이렇게 된 데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M3 곡사포가 엄청난 역할을 담당해준 덕분이기도 했다. M3는 미군이 공수부대용으로 사용하기 위해 포신을 단축한 모델인데 사거리가 M101의 절반인 6.5㎞에 불과했고 포구 속도도 느렸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 성과도 좋지 않아서 종전 후 많은 수가 폐기되거나 여러 나라에 공여됐다. 1948년 창군 당시 국군도 91문을 지원받았으나 그중 3문은 작동 불능 상태였다.

하지만 당시 국군에게 M3는 가장 강력한 무기여서 38선을 지키는 전방 사단에 1개 대대씩 배치됐고 이들은 전쟁이 발발하자 신화를 썼다. 문산 축선, 옹진반도에서 북한군에게 출혈을 안겨주며 아군의 지연 후퇴를 성공적으로 엄호했고, 의정부 축선에서는 직사로 적 전차를 저지하기도 했다. 동부전선에서는 이후 전쟁의 향방에 커다란 영향을 끼친 춘천대첩의 주역이었고, 강릉에서는 적의 남진을 이틀이나 저지시키는 데 앞장섰다.

M3 105㎜ 곡사포로 훈련 중인 창군 초기의 국군. 6.25전쟁 발발 당시에 연이어 신화를 썼고 이는 현재 서방 최강의 전력을 자랑하는 대한민국 포병의 자부심이 되었다. 군사편찬위원회

M3 105㎜ 곡사포로 훈련 중인 창군 초기의 국군. 6.25전쟁 발발 당시에 연이어 신화를 썼고 이는 현재 서방 최강의 전력을 자랑하는 대한민국 포병의 자부심이 되었다. 군사편찬위원회

이후 유엔군이 참전하면서 M3는 M101로 대체되었다. 그렇게 M3로 역사를 시작한 대한민국 포병은 어느덧 서방 세계 최강의 전력으로 성장했다. 그러는 동안 오랫동안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 105㎜ 곡사포는 자연스럽게 2선급 전력으로 지위가 낮아졌는데 처음 언급처럼 최근 새삼스럽게 다시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런 새옹지마를 보면 무기의 폐기나 도태는 최대한 신중하게 진행해야 할 것 같다. 우리나라 같은 안보 환경이라면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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