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비하인드컷

로봇 배우보다 더 중요한 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3면

나원정 기자 중앙일보 기자
나원정 문화부 기자

나원정 문화부 기자

최근 스타들의 얼굴을 감쪽같이 본뜬 인공지능 기술 ‘딥페이크’가 화제다. 그런데 이보다 먼저 인간 배우의 자리를 위협할 걸로 주목받은 존재가 바로 로봇 배우다. 일본에선 2010년, 안드로이드 로봇 ‘제미노이드 F’가 개발돼, 인간 배우와 2인극 무대에 오르며 세계적 주목을 받았다. 2015년 이 연극을 영화화한 감독은 이런 소감을 남겼다. “일반 배우보다 제미노이드 F와 작업이 더 쉬웠다. 밥을 먹거나 잠을 자지 않아도 되고, 아무 불평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배우들의 잇따른 사생활 리스크로 타격을 입은 작품 제작자라면 솔깃할 얘기다. 이후 안드로이드 배우의 공연은 세계 곳곳에서 시도됐다.

비하인드컷

비하인드컷

국립극단 사상 최초 로봇 배우가 주연을 맡은 연극 ‘천 개의 파랑’(사진)은 이런 분위기 속에서 단숨에 기대작에 올랐다. 휴머노이드 로봇 경마 기수가 주인공인 동명 소설을 토대로 했다. 이달 4일 개막을 앞두고 로봇의 어떤 이미지도 사전 공개되지 않았지만, 데뷔 무대를 위한 홍보전략으로 받아들여졌다. 74년 역사 국립극단에의 신뢰도 컸다.

이 연극 개막이 16일로, 갑자기 2주나 밀렸다. 초반 10회차 예매 관객한텐 개막 하루 전 공연 취소 통보가 날아들었다. 어렵게 표를 구한 관객들은 일방적인 환불 통보에 분통을 터뜨렸다.

극단 측은 2일 리허설 도중 로봇 전원이 꺼져 전체 회로를 점검키로 했다고 설명했다. 개발에 7개월 걸렸다는 작품치고 아쉬운 대처다. 이런 상태라면 공연 중 안전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건 아닌지 걱정이 생긴다. 새로운 도전보다 더 중요한 게 관객과의 약속과 안전이란 걸 잊어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