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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한경협, 삼성에 회비 70% 할인… 4대그룹은 "고민 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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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가 지난해 9월 55년간 사용한 전국경제인연합회 간판을 내리고 새롭게 출발했다. 한경협은 19일 오전 서울 여의도 FKI타워(옛 전경련회관)에서 표지석 제막식을 열고 정문 앞 전경련 표지석을 한경협 표지석으로 교체했다. 사진은 이날 공개된 한경협 표지석. 연합뉴스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가 지난해 9월 55년간 사용한 전국경제인연합회 간판을 내리고 새롭게 출발했다. 한경협은 19일 오전 서울 여의도 FKI타워(옛 전경련회관)에서 표지석 제막식을 열고 정문 앞 전경련 표지석을 한경협 표지석으로 교체했다. 사진은 이날 공개된 한경협 표지석. 연합뉴스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가 지난해 회원사로 복귀한 4대 그룹에 35억원 상당의 회비 청구서를 보냈다. 옛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시절 100억원 이상 회비를 내던 삼성의 경우 기존보다 부담이 70% 가량 줄었다.

8일 재계에 따르면 한경협은 지난달 말 4대 그룹을 포함한 427개 회원사에 새로 개편한 회비 체계에 따른 납부 공문을 발송했다. 과거 기업별로 제각각이던 회비 체계는 최근 3개년 매출액 기준 10개 구간으로 나눠 ‘동일 구간 내 동일 회비’로 개편됐다. 삼성·SK·현대차·LG 등 4대 그룹이 속한 제1 그룹의 회비는 35억원이다.

김경진 기자

김경진 기자

이어서 포스코·GS그룹이 속한 제2 그룹 회비는 22억원. 한화·HD현대가 속하는 제3그룹은 17억원, LS·신세계·CJ·한진·효성이 해당되는 제4 그룹 회비는 8억원이 청구됐다. 속한 그룹에 따라 회비가 20~30%씩 차이가 나 제10그룹의 회비는 수천만 원 선이다. 회장단에 속한 기업에는 3억원 추가 회비가 청구된다.

4대 그룹 회비, 왜 35억원인가?

류진 한국경제인협회 회장이 지난2월 16일 서울 여의도 FKI타워에서 열린 한경협 제63회 정기총회를 주재하고 있다. 이번 정기총회는 지난해 8월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이 한국경제연구원을 흡수 통합해 한경협으로 기관명을 바꾼 뒤 처음으로 열렸다. 뉴스1

류진 한국경제인협회 회장이 지난2월 16일 서울 여의도 FKI타워에서 열린 한경협 제63회 정기총회를 주재하고 있다. 이번 정기총회는 지난해 8월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이 한국경제연구원을 흡수 통합해 한경협으로 기관명을 바꾼 뒤 처음으로 열렸다. 뉴스1

4대 그룹에 할당된 회비 규모는 전경련 시절 내던 회비의 절반 수준이다. 박근혜 정부 시절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가 일어나기 전인 2015년 전경련은 회비로 약 500억원을 걷었고, 그 중 60% 이상을 4대 그룹이 부담했다. 특히 삼성의 회비 규모는 100억원 가량으로 가장 컸다.

이번 회비 체계 개편에는 류진 한경협 회장(풍산그룹 회장)의 뜻이 반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경협 관계자는 “회비 상당 부분을 4대 그룹에 의존하던 점을 개선하고, 복잡했던 회비 체계를 단순화했다”라고 설명했다. 한경협에 따르면 각 기업의 매출·자산·전년도 회비를 기준으로 산출하던 기존 회비 체계를 10개 그룹으로 단순화해 예측 가능성을 높이고 변동 폭을 줄이는 데 초점을 맞췄다고 한다. 계획대로 회비가 걷힌다면, 한경협은 올해 책정한 예산(290억원)의 95%에 해당하는 275억원을 회비로 충당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익명을 요청한 재계 관계자는 “한경협의 회비 수익은 당해년도에 전액을 사용하는 게 원칙이기에 이를 기준으로 책정됐을 것”이라며 “한경협 입장에서는 많은 돈을 걷는 것보다 4대 그룹이 회비를 납부했다는 상징적 의미가 더 중요한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회비 할인’에도, 4대 그룹은 “고민 중” 

이찬희 삼성 준법감시위원회(준감위) 위원장이 지난 3월 20일 오후 서울 삼성생명 서초사옥에서 열리는 삼성 준감위 3기 첫 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찬희 삼성 준법감시위원회(준감위) 위원장이 지난 3월 20일 오후 서울 삼성생명 서초사옥에서 열리는 삼성 준감위 3기 첫 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경협은 회비 납부 기한을 이달 말로 공지했지만 4대 그룹에선 납부 여부를 확정하지 못하는 분위기다. 그룹별로 어느 계열사에서 얼마만큼 부담해야 할지 등을 정하고, 해당 계열사의 이사회 승인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삼성은 지난해 8월 준법감시위원회가 발표한 한경협 가입 조건 권고안에 따라 회비 납부 전 준감위의 사전 승인을 받아야 한다. 준감위는 한경협이 불법적인 정경유착 행위가 일어나거나 회비를 부정한 사용을 했을 시 즉시 탈퇴하라고도 권고했다. 삼성 준감위는 오는 22일 회의를 열고 한경협 회비 납부 안건을 다룰 예정이다. 이후 30일 삼성전자의 이사회가 열린다.

재계에서는 오는 10일 있을 총선 결과에도 주목하고 있다. 2016년 국정농단 사태 당시 국회 청문회에서 4대 그룹 회장들이 야당 의원들에게 전경련 회원사라는 이유로 거센 질타를 받았었기 때문이다. 총선에서 야당이 우세한 결과가 나올 경우, 4대그룹들이 한경협 활동에 더 소극적으로 참여할 가능성이 크다.

한경협은 지난해 환골탈태를 선언하며 55년 만에 간판을 바꿔 달았다. 한국경제연구원을 흡수 통합했고 4대 그룹을 복귀시키는 데도 성공했다. 하지만 과거와 같은 위상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실질적인 활동의 상징인 ‘회비 납부’를 4대그룹이 모두 완료가 되어야 하는 상황이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기업으로선 수십억원의 회비를 내고서 얻을 득과 실을 꼼꼼히 따질 수 밖에 없다”라며 “한경협 스스로도 기업들이 가입해야 할 이유와 경제단체로서 존재의 의미를 더 증명해줄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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