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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 ‘좌파’ ‘우파’ 딱지 붙이는 그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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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정현목 기자 중앙일보 문화부장
정현목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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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문화정책 관련 인터뷰로 만난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자신을 비판한 한 보수 논객의 글 때문에 당혹스럽다고 털어놓았다. 세월호 다큐멘터리, ‘1980’ 같은 좌파 영화를 개봉하게 놔두는 유 장관은 도대체 뭘 하고 있냐는 내용이었다.

좌파 딱지가 붙은 세월호 다큐는 세월호 사건 때 딸을 잃은 아버지가 지난 10년의 세월을 카메라에 담은 ‘바람의 세월’이고, ‘1980’은 광주 민주화운동을 소재로 한 극영화다. 이에 대해 유 장관은 “시대의 비극을 추모하고, 되돌아보는 작품은 예술로서 가치가 있다. 좌파·우파 딱지를 붙여선 안 된다”며 “정치적 목적을 위해 만든 영화는 관객의 외면을 받게 돼 있다”고 말했다.

세월호 10주기 다큐에 좌파딱지
‘연평해전’ ‘국제시장’은 우파?
영화에도 파고든 진영논리 유감

얼마 전 윤제균 감독이 들려준 영화 ‘국제시장’ 뒷얘기도 씁쓸했다. “박정희 대통령 내외가 서독을 방문해 파독 광부·간호사를 위로하며 함께 눈물 흘리는 장면을 고민 끝에 넣지 않았어요. 만약 넣었다면 ‘우파 영화’라는 비난이 더욱 거세졌을 겁니다.”

가족을 위해 머나먼 이국땅에서 피땀 흘려 일하던 덕수(황정민)와 영자(김윤진)의 고생담에 그 장면이 들어갔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았을 터다. 물론 영화에는 ‘우파 영화’에 더해 ‘박정희 칭송 영화’란 딱지가 덧씌워졌을지 모르지만.

영화에 좌파, 우파 딱지를 붙이는 게 우리 사회의 고질병이 됐다. 세월호 10주기 다큐마저도 좌파 영화, 또는 총선을 앞두고 기획된 영화라 매도한다. 5년 전 세월호 소재 영화 ‘생일’이 개봉했을 때, 일본인 저널리스트 나리카와 아야는 충격적인 얘기를 들었다고 했다. “세월호 영화가 곧 개봉한다고 하니, 한국인 친구가 대뜸 ‘좌파 영화 아니냐’고 하는 거예요. 팽목항에서 세월호 사건을 취재했던 기자로서 너무나 황당했어요.”

세월호 사건을 그린 영화가 왜 좌파 영화인지, 내 짧은 식견으론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런 매도야말로 유족의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일 아닌가. 추모에 좌우가 어딨나. 1300만 관객을 모은 영화 ‘서울의 봄’도 일부 보수 유튜버들에 의해 좌편향 딱지가 붙었다. 신군부의 권력 찬탈 과정을 보여주는 영화에 좌파 딱지를 붙이는 건, 군부 독재를 정당화하는 논리밖에 되지 않는다.

‘그들’의 눈엔 애민 정신을 주제로 한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도 노무현 전 대통령을 떠올리게 한다는 이유로 좌파 영화다. 노 전 대통령을 모티브로 한 ‘변호인’, 광주 민주화운동을 다룬 ‘택시운전사’, 80년대 정치 격동기 배경의 ‘남산의 부장들’과 ‘헌트’도 좌파 영화 리스트에 올라 있다. 봉준호 감독은 대표적인 좌파 영화인이다. 계급 갈등을 드러내는 ‘기생충’, ‘설국열차’ 같은 영화를 만드니 말이다. 아, 반미 영화 ‘괴물’도 빼놓아선 안 되겠다.

‘그들’과 대척점에 있는 ‘또 다른 그들’에 의해 ‘우파 영화’로 난도질당한 영화도 부지기수다. ‘국제시장’은 ‘아버지 세대의 희생 만을 강조한 반동 영화’라는 비난을 받았고, 영해를 지키다 산화한 해군 장병의 실화를 담은 ‘연평해전’은 ‘130분짜리 예비군 안보훈련 영화’라는 비아냥을 들었다. ‘인천상륙작전’에 대해선 ‘시대와 함께 역행하는 영화’, ‘반공주의와 영웅주의로 범벅된 영화’ 등 비난의 포화를 퍼부었다. 만듦새를 떠나 소재 자체에 불만을 가진 비난들이다.

2017년 홍준표 당시 자유한국당 대표는 “좌파코드 성향을 띠지 않는 영화는 천만 관객을 모을 수 없다”고 주장했는데, 이는 관객의 선택을 모욕하는 발언이다. ‘좌파’ 든 ‘우파’ 든 시대 정신과 공명하는, 잘 만든 영화는 관객의 지지를 받는다. ‘변호인’과 ‘국제시장’ 모두 천만 영화로 만들어준 우리 국민은 균형 감각을 지닌 현명한 관객이다.

다큐멘터리 ‘건국전쟁’의 흥행 또한 그런 연장선에 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의 공(功)만 부각한 단점은 있지만, 이 시대에 필요한 영화였다. 하지만 김덕영 감독 스스로 작품의 의미를 훼손시켰다. 영화 ‘파묘’를 ‘좌파, 반일선동 영화’라고 비난해 물의를 빚더니, “노무현 다큐(‘노무현입니다’, 185만 관객)를 넘어서야 한다”며 끝까지 목소리를 높였다. 노무현 다큐를 이기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공감대를 더 넓힌 완성도 높은 작품으로 더 많은 관객을 만나는 일 아닐까. 굳이 다른 영화에 색깔을 덧칠할 필요가 없다.

영화에 좌와 우가 따로 있는 게 아니다. 부당한 딱지를 붙임으로써 이득을 보려는 세력이 있을 뿐이다. 이해와 연민, 공감을 통해 화합을 이뤄내는 것보다 진영 논리와 색깔론으로 갈등을 부추기는 게 이득이 된다고 믿는 세력 말이다.